[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거미집/ 오양심 시. 이광희 사진

오양심 2020-07-23 (목) 10:17 3년전 1231  

 

거미가 집을 짓는다 잘 마른 소나무에 검은 먹줄을 튕기며 검붉은 비늘을 대팻밥으로 쏟아낸다 속살을 깎고 구멍을 뚫고 기둥과 서까래 상량나무와 마룻대 문짝과 문틀까지 마무리 해놓은 거미는 타고난 목수이다.

 

밤새 집짓는 구경꾼을 위해 술과 과일이 차려지고 매콤하게 버무린 배추김치와 돼지머리가 준비된다. 팥고물을 안친 시루떡에 김이 오르면 팥죽을 끓인다 쌀가마니 무명모시 광목같은 피륙도 쌓아놓는다

 

상량문에는 二千一年 五月十五一 亥時(이천일오 오월십오일 해시) 應天上之三光 備人間之五福 (응천삼지삼광 비인간지오복)이라 쓰고 ()자와 ()자를 마주대하도록 써 놓는다.

 

서까래가 올라가면 배가고픈 구경꾼이 괭이와 삽을 들고 지게를 지고 나선다 지붕에 올릴 흙은 논흙이 제격이라 마당에다 흙단을 쌓고 작두로 짚을 썰어 맨발로 이갠 다음 지붕으로 훌쩍 올라간 흙두덩이 들이 웃고 떠들고 뒹군다.

 

대궐 같은 거미집이 순식간에 만들어진다 세어보니 틀림없는 아흔 아홉 칸이다 산이 보이고 들이 보이고 호수를 끼고 돌며 보름달이 뜨는 집 거미가 서까래 밑에 기진맥진 엎드려 있다 달빛과 함께 자세히 들여다보니 살아온 날들이 상처투성이다.

 

*응천삼지삼광 비인간지오복(應天上之三光 備人間之五福) 하늘의 해달별 세 가지 빛에 응하여 인간 세계에 오복(五福)을 갖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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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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