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인, 수필] 첫 수업, 누나는 하늘이야/ 한글로 세계문화강국만들기 1기

관리자 2020-02-21 (금) 08:21 4년전 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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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인

 

의대생 아버지와 열여덟 엄마의 슬픈 사랑의 결실로 나는 태어났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인이는 928일 서울 수복 날에 태어나서 복이 많은 아이라고 하셨다. 남동생들에게 누나는 하늘이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 큰아버지 고모들과 사촌 언니들이 인이는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이구동성(異口同聲) 말씀하셨다.

 

어렸을 때부터 얼짱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학창시절에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을 보냈다. 반 지하 초가지붕 밑에서 2원하는 학사빵집이, 기와집보다 가난하다는 것을 대학가서야 알았다. 의사되라고 보내준 대학교 간호학과에서, 앙상한 뼈를 보며 울었던 해부학 시간에, 예수님을 만났다.

 

주님과 함께 광야 40년을 동행했다.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다는 미당 서정주시인의 시에서처럼, 나는 지금 오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있다. 깨지고 터지고 갈라져서, 금이 갈대로 가버린 마음속으로, 글들이 시()들이 생수가 되어 마구잡이로 흘러들어온다. 이곳으로부터 하늘의 딸로 변화되려나 보다.

 

그동안 변함없이 잊지 않고 보내주신 오 교수님의 카톡 때문에, 감사해서 나선 것이 두 번째 만남이자, 첫 강의를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글로 세계문화강국만들기 과정을 살펴보다가, 글쓰기를 처음부터 배울 수 있다는 것에 관심이 생겼다. 성경책과 기독교 서적만 읽어온 내게, 고전 명작과 명시들을 중심으로, 읽고 토론하고 평가하고 정리한다는 교육적 제시에 대하여 마음이 움직였다. 부족하고 텅 빈 내 안을, 삶의 지혜로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욕심이 나의 발걸음을 재촉하게 했다.

 

조금 더 나아가, 내 생을 다 시 한번 정리할 수 있는 자서전도 써보면서, 나를 만나고 채우고 싶은 바람도 있었다. 3개월만 참석한다는 것도 부담이 없어 좋았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읽어주시는 교수님으로부터 첨삭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기대되고 좋았다. 교수님께 나를 내보이고, 부족한 부분을 지도받으면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의존심이 작동했다.

 

연륜과 경험이 풍부한 선생님들을 뵈니, 내가 올 자리는 아닌데, 무식해서 용감한 김인이가 또 실수를 범했구나 싶었다. 마치 성장 통이 늦은, 다섯 살짜리 같은 내가, 차원 있는 강의를 어떻게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교수님의 강의 목적은, 한글로 세계문화강국을 만드는 일에 동참하고, 동역할 리더를 키우는 것이었다. 절대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은 아니라는 것을, 보잘 것 없는 내 글이 유투브에 실린 것을 보고야 깨달았다.

 

아뿔사! 내 생일이 929일 서울 수복에 태어났다고 시를 썼더니, 교수님은 내가 1950928일 서울수복의 날 태어난 것으로 착각하고 첨삭을 하셨다. 차라리 내 나이가 밝혀지지 않은 것이, 부끄러운 나를 숨길 수 있는 방패가 되어 다행이라 여겼다. 어떻게 설명을 드리고, 삭제를 부탁해야 하나 고민스럽다.

 

나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주어진 시간에 강의실에 조용히 앉아있는 것과, 눈에 보이고 느껴지는 대로 기도하는 것 밖에는 없다. 그래도 교수님께서 괜찮다 하시면 강의를 마치는 날까지 성실하게 참석하고 싶다.

 

수업 중에 교수님의 길이란 시가 동병상련(同病相憐)이 되어 내 마음을 울린다.

 

배고프다 꿈이다 바람이다 꽃이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은 끝없는 이 허기

세상 속 비틀거리며 헛딛어도 가는 길

 

흙길 돌길 벼랑길 지친 걸음 끝이 없다

꽃길 눈길 사랑길 지나오면 다시 그길

살아서 못다 걸은 길 죽어서도 가는 길

 

오양심 교수님이 서 계신 길 위에서, 나는 망설이고 두려워하고 있다. 또 이제껏 그러셨듯이 보이지 않는 주님이, 손을 잡아서 이끌어주신 것 같다. 침묵하신 주님에게 당신께서 인연을 맺어주기 위해, 등 떠밀어 주신 길이냐고, 막무가내 묻기도 한다.

 

두 번째로, 묘비명을 쓸 때 나를 슬프게 한다. 아주 짧은 몇 초 동안에 나는 묘비명을 쓴다.

 

김인 목사 편안하게 하늘나라가다.

남편 000목사

자녀 사위 000-000,000,000

 

눈물이 왈칵 솟아오른다. 아직 둘째 사위도 예쁜 며느리도 그리고 손주 손녀도 못보고 가는 구나. 하나님 앞에 드릴 업적은 없다. 그저 불쌍히 여겨주셔서 주님 만났던 그날부터 오늘까지 사랑해주셨고, 은혜 베풀어주셔서 몸부림만 쳤다. 열매가 없는 부족한 딸 목사로, 하나님의 딸로 편안히 아버지께 가고 싶은 바람을 묘비명으로 적는다.

 

나는 교수님의 종교관을 모른다. 교수님을 특별히 쓰시는 하나님이 보인다. 참 대단하시다. 한글 세계화 운동 뒤에 영혼구원의 비밀을 안고 살아가신다. 기도드림으로 작은 힘이 되어드리고 싶다. 그리고 교회를 떠난 자연스러운 세상 속에서 내 마음에 단단하게, 차곡차곡 쌓여 있는 길가 같은 밭을, 글쓰기라는 쟁기로 갈아보고 싶다. 주님 주신 마음으로 묵은 땅을 그리고 생땅을 갈아보고 싶다. 그러면 주렁주렁 생명의 열매, 하늘열매가 열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