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우 수필] 비밀의 방<난로 그리고 도시락>18

이훈우 2020-10-06 (화) 08:59 3년전 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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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우/ 일본동경한국학교교감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일본 본부장

  ‘여기! 여기로 몰아!’
  ‘선생님! 선생님 쪽으로 토끼가 갔어요!’
  선생님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시지도 않고 상체만 이쪽저쪽으로 움직였는데 토끼가 선생님의 상체 움직임 반대방향으로 휙! 휙! 방향을 틀다가 엉겁결에 선생님 발밑에 와 버리고 말았습니다. 선생님은 순식간에 허리를 숙여 토끼를 잡아챘습니다. 그렇게 쉽게 토끼를 잡으리라고는 누구도 상상을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젊으셨지만 도시 사람인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선생님은 학교 다닐 때 핸드볼 선수로 오랫동안 활약을 하셨다고 합니다. 나중에 우리 학교에서도 직접 핸드볼 부를 만들어 밤낮으로 지도를 해 주셨습니다.

겨울이면 교실에 난로를 설치하는데 조개탄을 사용합니다. 나무토막에 불을 붙이고 그 위에 조개탄을 얹으면 불이 붙게 되는데 화력이 대단합니다. 연통은 천정을 거쳐 창문을 통해 교실 밖으로 나가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주먹 정도의 크기로 다이아몬드 형태로 만들어진 조개탄을 쓰다보면 나중에는 탄들이 부서져서 굵은 모래처럼 되어버립니다. 불도 잘 붙지 않고 바람에 날려서 불편하기 그지없습니다.

난로 당번들은 언제부터인지 그 탄을 물에 개어서 반죽을 만들어 난로에 넣었습니다. 부서지지 않은 탄보다 훨씬 불도 잘 붙고 화력도 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장작이 떨어지면 선생님은 진도를 뒤로 미루고 가까운 산으로 솔방울을 주우러 갑니다. 난로를 피울 때 장작대신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송진을 잔뜩 머금은 커다란 솔방울은 불도 잘 붙고 화력도 세서 가정에서도 많이들 사용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솔방울을 주우러 갔습니다. 금방 솔방울을 목표량만큼 모아놓고 토끼 사냥을 합니다. 서로 간격을 유지하면서 산을 빙 둘러싸고 정상으로 토끼를 몰면 정상에서 한 두 명이 기다리고 있다가 토끼를 잡는 형태의 사냥입니다. 시골아이들은 말하지 않아도 자기의 역할을 잘 이해하고 완벽하게 완수해냅니다. 오늘은 토끼를 네 마리나 잡고 부엉이도 두 마리 잡았습니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추운 교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많은 아이들이 난로 곁으로 모여듭니다. 난로위에는 양철 도시락들이 탑을 이루고 있습니다. 당번은 위의 도시락과 아래 도시락을 수시로 바꾸어줍니다. 추운 겨울에 도시락을 데워서 먹는 것입니다. 한참을 난로 곁에서 아이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다보면 어디선가 툭 툭 이가 떨어집니다. 지금은 놀라 자빠질 지경이겠지만 당시는 누구도 놀라지 않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슬그머니 이를 발로 밟습니다.

이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작은 기생충입니다. 따뜻한 것을 좋아해서 몸속보다 난로의 열기가 더 따뜻하니까 옷 밖으로 나왔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몸이 근지러워서 옷 속으로 손을 넣으면 한 두 마리의 이를 순식간에 잡을 수 있습니다. ‘요놈, 어디 남의 귀한 피를 빨아!’ 라는 마음으로 입속에 통째로 넣고 이빨로 지그시 터트리면 피가 터집니다. 피는 빨아먹고 껍질만 뱉어버리는 무시무시한 일을 아무 생각 없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 상상도 하지 못하겠지만 그 때는 많이들 그렇게 했습니다. 징그럽지도 불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빼앗긴 내 것을 다시 찾는 마음…. 피를 빠는 해충은 이 발고도 빈대와 벼룩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찾아도 볼 수 없는 시대가 되었지만 예전에는 곁에서 같이 살았다고 할 정도로 쉽게 볼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방어막도 쳐져 있지 않은 난로 주변에서는 사고도 자주 일어납니다. 서로 가까이 불을 쬐려고 난로 곁에 모이다가 뒤에서 밀어버리는 일이라도 벌어지면 연통에 얼굴이 닿아 화상을 입기기 일쑤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벌겋게 달아있는 뜨거운 난로 위에 손을 짚기라도 하는 날이면 진짜 큰 일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보통은 난로 위에 5리터짜리 커다란 주전자에 물을 채워 얹어놓습니다. 교실의 습기 조절과 청소용 물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교실 바닥은 ‘토쿠다시’라는 시멘트 바닥이거나 나무로 되어 있는데 청소를 하기 전에는 물을 뿌립니다.

그 때 주전자의 펄펄 끓는 물이 얼마나 뜨거운지 모르고 아이들이 노는 곳으로 장난삼아 뿌릴 때도 있습니다. 제대로 씻지도 않고 밖에서 놀이를 하는 통에 손이 트고 얼굴이 거북등딱지 같아도 뜨거운 물에 닿으면 똑같이 화상을 입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에도 마을에도 화상을 치료할 약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까징기’라는 빨간색의 소독약이 모든 상처의 치료약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친구가 뒤에서 미는 바람에 벌겋게 달아있는 난로에 손을 짚고 말았습니다. 얼른 뺐지만 살타는 냄새와 함께 제법 많은 살이 떨어져 나가 난로 위에서 타고 있었습니다. 너무 무서워 교무실로 뛰어가 선생님을 찾았는데 선생님은 괜찮다고 하시며 빨간 잉크를 발라주셨습니다. 별다른 약이 없던 시절에 화상에는 잉크를 약 대신에 바르곤 했었습니다.

당시는 선생님의 말씀이면 뭐든 믿고 따르던 때라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시니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에 와서는 다친 손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했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꾸중을 듣고 오거나 사고를 치게 되면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부모님께 많은 꾸중을 들어야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다행히 상처는 겨울이라 덧나지 않고 잘 나았습니다. 지금도 흉터는 남아있지만….

일본 도쿄 신주쿠의 한국인촌에 가면 한국식당들이 즐비합니다. 그 중에 ‘학교가자!’라는 특이한 간판의 식당이 있습니다. 거기에 가면 스텝들이 모두 예전 한국의 고등학교 교복과 교련복을 입고 일을 합니다. 메뉴 중에 ‘철도시락’이 있는데 예전 도시락의 향수를 느끼게 해 줍니다. 양철로 만들어진 도시락에 밥과 반찬을 넣고 계란 후라이를 얹어서 내어줍니다. 난로 위에 얹어서 데워먹던 추억을 떠올리게 해 줍니다. 식당 전체는 당시 학교 교실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놓았습니다. 오르간도 있고, 칠판, 책걸상, 청소용구 그리고 난로까지 완벽하게 똑같이 만들어 놓았습니다. 도시락을 받으면 뚜껑을 닫은 체 아래 위 그리고 좌우로 있는 힘을 다해 5분 정도 흔들면 비빔밥이 됩니다. 맛도 맛이지만 예전의 추억을 회상하며 즐기게 됩니다. 점심 시간이 되기 전에 선생님 몰래 까먹던 도시락!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