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공무원 집안에서 태어나 사업하는 집안으로 시집을 갔다 돈밖에 없어서 불안했다. 신문 광보를 들출 때마다 웬만한 것은 모두 가질 수 있어서 겁이 났다. 사는 동안 행복이 폭설처럼 쏟아졌다. 등 따습고 배불러도 감사한 줄을 모르고 살았더니 우여곡절이라는 놈이 찾아와서행복을 폭설 속에 파묻어버렸다.   미역국은 먹었는가 건강이 최고여!웃어가면서 살세   안부를 물어주는데도 불안하다.남아있는 정(情)마저 폭설에 묻힐까 봐   ▲이광희 作조용필은 한국을 대표하는 대중가…
나에게 난초는 화초가 아니었다 엄동설한에도 봄을 선물해 주면서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감싸주곤 했다난초만 있으면 곁에 있으면 아픈 줄을 몰랐다 슬픈 줄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였다 그는 얼마 안가서 죽을 거라고 말을 했지만 나는 전혀 모르쇠 했다 이천 일십 삼년 칠월 열엿샛날 아침 다섯 시였다   “먼저 간다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메시지를 보낸 작자는 난초가 아니었다 꽃이 피면 잎을 볼 수 없는 개 난초였다잎으로 살면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절망을 묻어…
꽃 한 송이 만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허공을 날아올랐던가 멀리 보면 하늘과 땅이 붙어 있는 것처럼 그 틈에서 바람과 구름이 노니는 것처럼그 틈새의 틈새 속에 산과 바다가 정다운 것처럼 나비 한 마리 꽃잎에 눕자마자 금세 한 몸이 된다   궁•상•각•치•우 노래가 된다                                       &…
 ▲오삼식/(1927, 3, 13~2002, 8, 17)육이오참전용사참전기간(1952, 7, 14~1957, 5, 15)참전지역(강원도 양구, 육군제20사단, 37시단, 백일근무사단)대통령 표창장 제49557호  무공화랑훈장증 55-3834호 -오양심 시인의 아버지  피의 능선 양구에서육이오에 참전했던 아버지에게 전쟁이야기를 해 달라고 어린시절 철없이 졸랐다 산처럼 말이 없던 아버지는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실을 꿴 바늘로 종이를 엮어서 통일선언문 책을 만들었다.   …
당신은 신령한 이 땅의 태극 언어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혁신으로 태어난 불사신입니다 동서남북을 하나로 이어놓고 오대양 육대주를 하나로 이어놓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도 하나로 이어놓은 당신은 휘황찬란한 미래이며 영원불멸의 노래입니다 흠도 티도 없는 당신과 함께 있으면 기쁩니다 새롭습니다 눈부십니다 신비합니다 자랑스럽습니다 대한민국이여 지구촌 식구들이여! 땅 끝까지 한글 세상이 되었습니다세계 구석구석 한국어 세상이 되었습니다우리 풍악을 울리면서 한바탕 놀아봅시다  ▲한글세상 한국어 세상이 열려서 풍악을 울리면서 푸지…
어느 날부터 눈감는 버릇이 생겼어요 힘들 때 외로울 때​습관처럼 눈을 감는답니다​제 가슴에 꽃씨하나 심어주고 새가 날아가듯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늘로 가버렸거든요   그리워서 보고 싶어서 하염없이 노래를 불렀더니 아름다운 무지개로 피어난 꽃잎이 향기를 내뿜어 주었어요   꽃 냄새가 고스란히 천상과 지상으로 이어져서 웃니라고 노니라고 시간가는 줄 모른답니다 ▲사진 이광희 作  
시인은 알고 있다.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사실보다 눈에 보이지 않은 진실이 더 아프다는 것을   내가 믿고 있는 神도그 말 못할 아픔 속에서 날마다 나와 동행하고 있다는 것도   엄동의 긴긴 밤을 혼자 외로워하면서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고백할 수도 입 다물고 무덤까지 끌고 갈 수도 없는 천형 같은 진실은   어느 초봄생살 찢어진 가지 비집고 나와 울면서 터트린 홍매 같은 것이라는 것도 ▲이광희 作
오월 열 닷샛날이다 한글(한국어)세계화운동연합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늦은 저녁이다집 근처 호프집에서 참회의 술을 딱 한 잔 마셨을 뿐인데어지간히 간땡이가 부었나보다 그 길목에서우리 큰 아들 같이 잘 생긴우리 작은 아들같이 훤칠한 장미꽃 두 송이를 양손에 꺾어들고는이놈들아! 이 이쁜 놈들아! 하고말해놓고 번갈라 쪽쪽 입을 맞춘다 엄마가 미안하다고속 썩혀서 미안하다고그래도 사랑한다고 횡설수설하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삿대질을 하다가 소락대기를 지르다가&nbs…
양철도시락 달랑 넣은 책가방 옆구리에 끼고학생모는 삐딱하게 눌러서 쓰고파스도 한 장 볼따구니에 붙이고나팔바지를 입고 통기타를 둘러메고연애 골을 오르내리며십대를 강타했던 우리 오빠 이십 세에 자동차를 사라그렇지 않으면 대학을 가라책상 앞에 단 두 줄 신주단지처럼 모셔놓고권투선수보다 더 빡세게자신의 꿈을 향해 펀치를 날리면서 70년대를 주름잡았던 우리 오빠 극장 앞 제과점에서빵을 실컷 먹게 해주고미워도 다시 한 번 영화도 보여주고빨간 자전거 뒤에 태워 남도일대를 누비면서우리 동생처럼 이삐게 …
 ▲이광희 作 봄이 왔다. 봄 하면 우선 개나리, 진달래가 앞 다투어 피고. 달래 냉이 꽃다지 등 나물들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피어나 저마다의 독특한 향기를 뿜어 공기를 정화한다.   세시풍습에서, 정월은 봄이 처음 시작된다는 뜻의 맹춘(孟春)이라서, 농사 준비에 바쁘고, 2월은 봄이 한창인 때라는 뜻의 중춘(仲春)이라서, 가축 돌보기에 바쁘고, 3월은 늦은 봄이라는 뜻의 모춘(暮春)이라 하여, 논 밭 돌보기에 바쁘다. 파종, 과일 접붙이기, 장 담그기 등에 온 정성을 쏟았던 풍습이 이어져 오고 있다. …
하늘이 열리는구나 땅이 열리는 구나순천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구나이 무슨 신명의 날이기에천지인 삼재가 함께 어우러져지구촌 큰 잔치를 열고 있는가무궁한 새 역사에 뿌리를 내리는가   순천은 도시가 아니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정원이다삼산(三山)은 산이 아니고 이수(二水)는 물이 아니다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홍익인간을 낳고 기른 무릉도원이다단군 할아버지의 오천년 역사자자손손 내려온 순천만의 얼굴내나라 내형제의 칠천 칠백만 가슴이다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저 비경은 누가 빚어 놓았을까?고동치는 심…
순천 아랫장에 갔습니다 생선 몇 마리 사서회를 치든지 석쇠에 굽든지 하려고요장터에 막 들어섰는데 트럭을 둘러싼 아낙네들이소란을 피우고 있었어요그 틈새를 헤집고 들어갔더니오메, 뭔 놈의 잡것들이 벌건 대낮부터짭짜래한 비린내를 풍기고 있었을까요?숭악한 아지매들은 애리애리한 것들을만지작거리며 흥정을 했고요운전수 아저씨는물 좋은 머시매들로만 잡아왔기 때문에손을 대기만 해도 까진다고 너스레를 떨더군요근데요 은빛 비늘의 눈부심을눈요기 했을 뿐인데요내 안에 거시기가 탱탱해지더니젖꼭지가 빳빳하게 서더라니까요뼈 속까지 투명해서 뼈라고 할 …
 그가 나에게 한 수 가르쳐 준다 슬프면 때로는 울어라고   삶이 힘들면 세상사 잡사를 모두 놓아버리고 그만큼의 거리에서 바라만 보라고   욕심내지 말고 잘하려고도 하지 말고 그저 주어진 대로 순응하면서 묵묵하게 앞만 보고 걸어가라고   그래야 민들레 홀씨처럼 몸과 마음이 가벼워져서 발길 닿는곳마다 꽃을 피울 수 있다고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
 형!복숭아 먹고 싶어복숭아가 어데 있노과수원집에 쌀이나 보리 가져가면 준다고 하던데…그 말이 떨어지기가 광으로 달려갔다얼마 전 탈곡을 마친 포대자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들킬까봐 간이 오마조마했지만 냅다 둘러메고 달음박질을 쳤다 중대가리처럼 털도 나 있지 않은 맨들맨들한 것은 복숭아가 아니었다 꿀맛이었다   동생과 둘이서 스무 개 남짓 먹고 말았는데 천도복숭아 세 개를 먹고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동방삭이가 생각나서 할아버지보다 아버지보다 오래 살까봐 와락 겁이 났다  ▲이광희 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