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직녀에게/ 문병란시, 이광희 사진

관리자 2019-10-24 (목) 08:08 4년전 743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올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e7c5723d68d9acabfb8e0b0bd605c23d_1571872052_8825.jpg▲이광희 作<꽃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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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희 作<꽃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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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희 作<꽃3>

 

 

이 시는 '견우직녀설화(牽牛織女說話)'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견우성과 직녀성은 사랑을 한다. 하지만 은하에 다리가 없기 때문에 만날 수가 없어 회포를 풀길이 없다.

 

딱한 사정을 알고 해마다 칠석날이 되면, 지상에 있는 까마귀와 까치가 하늘로 올라가 몸을 잇대어 은하수에 다리를 놓아 준다.

 

다리 이름이 오작교(烏鵲橋)이다. 견우와 직녀는 오작교를 건너와 1년 만에 회포를 푼다. 하지만 사랑의 회포를 풀기도 전에, 새벽닭이 울고, 동쪽 하늘이 밝아오면 다시 이별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칠석날에는 까마귀 ·까치를 한 마리도 볼 수 없다는 속설이 있다. 어쩌다 있는 것은 병들어서 오작교를 놓는 데 참여하지 못한 까마귀나 까치들뿐이라고 한다. 칠석날 저녁에 비가 내리면 견우와 직녀가 상봉한 기쁨의 눈물이고, 이튿날 새벽에 비가 오면 이별의 눈물이라 전한다.

 

위와 같이 이 시는 견우직녀설화를 차용하여 시적 소재로 적고 있다. 시 속의 견우와 직녀의 상황은 설화 속 주인공들보다 훨씬 가혹하다. 인간의 모든 것이 상실된다고 해도 '우리는 만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직녀에게는 민주화 시절 재야 운동권에서, 노래로도 작곡되어 즐겨 불렀다.

  <오양심/ 前건국대학교 통합논술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