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오양심의 시, ‘편안합니다’ 를 생각하며, 박경리 선생님 묘소 앞에서

관리자 2019-08-21 (수) 10:26 4년전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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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 作>

 

[오코리아뉴스=이광희 기자] 오양심은 신산이라는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납니다. 연예에 대한 재능이나 소질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주체할 수 없는 끼를 타고난 오양심은, 어릴 때부터 책과 친구였습니다. 청소년기에는 아예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부의 사회적 이동과 여성의 운명이 한데 어울려 주제화를 시킨 토지를 읽습니다. 또한 흑백 TV의 토지 드라마를 접하고는, 소설가의 길을 가기 위해 청운의 푸른 꿈을 키웁니다.

 

하지만 유교집안에서 태어난 오양심은 예술의 끼를 발휘하기도 전에, 결혼을 하게 됩니다. 가문의 영광을 위하여 현모양처의 길을 걷게 된 오양심은, 사내 아이 둘을 낳습니다. 하지만 살림에는 도통 관심이 없습니다. 소설가의 길을 걷고 싶은 오양심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괴리를 느낍니다.

 

박경리 선생님이 쓰신 김약국의 딸들이라는 책을 손에 달랑 들고,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원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원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오양심은 택시를 세워, 박경리 선생님 댁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지만, 기사님들은 한결같이 박경리가 누군지, 잘 알지를 못합니다.

 

택시를 타고 무조건 원주 경찰서로 찾아간 오양심은, 박경리 선생님 댁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합니다. 다행스럽게도 경찰은 자신도 학창시절에 문학도였다고 동감합니다. 오양심은 우여곡절 끝에 경찰 백차를 타고, 두 분의 경찰관 호의를 받으며 박경리 선생님 집으로 가게 됩니다.

 

박경리 선생님은 삐융삐융 하는 경찰차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합니다. 사위 김지하 시인이 감옥살이를 할 때였기 때문입니다.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다섯 종류의 오적(五賊)으로 간주하고 풍자비판한 작품인 <오적>을 써서 옥고를 치르고 있던 불행한 시절에, 장모인 박경리 선생님도 바깥출입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감금상태였습니다.

 

느닷없이 경찰 백차를 타고 들이닥친 오양심은, 제자가 되게 해 달라고 막무가내 떼를 썼고, 박경리 선생님은 아직 유치원에도 다니지 않은 아기들을 어떻게 하느냐고, 타일러서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살아생전의 박경리선생님과 오양심시인과의 이약(전라도 방언), 이바구(경상도 방언)는 다음에 싣기로 하겠습니다.

 

 

편안합니다/ 오양심

박경리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200855

 

가서는 돌아오지 않은 사람을 흠모한 적이 있다

오직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간직한 채

고속버스에 무작정 몸을 실었다

컨테이너 박스를 연상시킨 그 집은

대낮인데도 짐승들이 으르렁거렸고

어둑어둑 무거운 공기는

오래된 무덤처럼 을씨년스러웠다

그날 어깨를 다독여주며

모진 세월을 혼자 살다보니

짐승과 함께 일가를 이루게 되었다고

숟가락소리 웃음소리가 끝난 뒤에

글을 써도 늦지 않다고

피붙이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셨다

가끔씩 전화로 생사초월의 경지를

누리게 해주신

선생님

 

산소 앞에 서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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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 作/ 박경리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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