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여름밤에는/ 문기주

관리자 2021-08-18 (수) 06:44 2년전 1687  

 

여름밤에는 시를 쓴다.

마당에 깔아놓은 멍석 위에서

보리밥을 먹었다고 쓰고

그 옆에서 모깃불이

토닥토닥 타들어 갔다고 쓴다.

엄마 젖꼭지를 물고

동생이 잠들었다고 쓰고

쉰내 나는 엄마 적삼 밑에서

별빛도 달빛도 잠들었다고 쓴다.

삽살개가 잠들고 온 마을이 잠들었을 때

살며시 대문을 빠져나와서

깨댕이 친구들을 만났다고 쓴다.

 

친구들아!

풀숲에 숨어서 천근만근의 고독으로

가을을 부르고 있는 저 귀뚜리의 눈물을 어째야 쓰까 이

어린 시절 수박 서리 참외 서리를 하면서 날을 보냈던

가슴속 깊숙하게 묻어놓은 그리움이

오늘 밤에는 울음으로 툭 터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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