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특집] 구말모 서거/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일본회장(남북통일과 한일관계 개선 역사의 증인)

강지혜 2022-01-11 (화) 04:29 2년전 4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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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말모(한글세계화운동연합 일본) 회장이다. 

 

[오코리아뉴스=신락균기자] 구말모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일본 회장이 2022년 1월 8일 향년 86세로 일본에서 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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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말모 회장의 聖和式 장면이다(1935. 10. 03 ~ 2022. 01. 08)

 

■구말모 그는 누구인가?

 

구말모(1935.10.03~2022.01.08)는 역사의 산증인 재일한국인이다.

 

‘겨레하나 되기’ ‘원 코리아’를 평생 소원했다. 남북통일, 한일관계개선, 한글세계화에 앞장선 구말모는, 한국 여수시 미평동이 본적이다. 1935년 일본 시가현모리야마 시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부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교 대학원 정치학부를 졸업했다.

 

한국 연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박사과정 수료하고 주일본 한국대사관 사전담당을 했다. 국민대학교 법학부 강사, 목포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겸임교수,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 및 상임위원, 재일한국학생동맹 중앙본부 부위원장, 재일한국청년동맹 중앙본부 문교부장, 재일한국민단동경본부 권익옹호위원장, 재일한국민단동경본부 평화통일추진위원장, 재일한국민단동경신주꾸지부 고문을 했다. (사)한국 근우회 일본대표, (사)아태평화교류협회 고문, 재일 전남도민회 회장, 2012여수세계박람회 홍보대사, 2013순천만국제박람회 홍보대사, 한국어세계화운동연합 일본회장 등이다.

 

특히 구말모는 서영훈(前국무총리), 이구홍(前재외동포재단 이사장), 김민하(前중앙대학교 총장)등과 친분이 두터웠다.

 

구말모는 1971년 연세대학교 유학 중, 북한을 방문했다는 이유로 간첩죄에 몰려 15년의 실형을 받고 10년 복역 후 가석방되어, 41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고 함께 기뻐해준 조영선 변호사 등에 감사했다.

 

구말모의 업적은 많다. 그 중에서는 남북통일, 한일관계 개선, 한글세계화 등에 온 힘을 쏟았다.

 

■구말모의 마지막 업적은?

 

민간외교에 힘쓴 구말모 회장은 2015년 9월 21일부터 22일까지 한국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 2층 로비에서 일본 고바야시 후요와 함께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한일여류문화교류시서화전 한국전’을 개최했다.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개최된 이 행사는 성황을 이루웠다.

 

일본에서는 고바야시후요(일본의 시서화가, 퍼포먼스작가)작가의 100여명의 제자들과 일본인 한일관계 개선 등에 종사한 분들이 참석했고, 한국에서는 오양심시인을 비롯하여 김무성(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과 이희자(한국근우회)회장 등 수십 명의 국회의원과 정재계 인사들 500여명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하지만 구말모는 불행하게도 ‘한일여류문화교류시서화전’을 마지막으로 모든 외교활동을 접었다. 일본으로 건너 간 구말모는 41년간 간첩으로 몰려, 한쪽 수족과 청각을 잃은 후유증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했다.

 

https://youtu.be/0byIqmddeBk

 

그럼에도불구하고 구말모의 한국과 일본 관계개선에 대한 외교활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병원에 입원해서도,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기념 특별전으로 ‘한일여류문화교류시서화전’ 을 10월19일부터 21일까지, 일본에서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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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구말모 회장은 참석을 못했지만, 한국의 오양심 시인은 일본의 고바야시 후요와 함께 고야산 불교성지와 고야산 대학교에서 행사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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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고바야시 후요는 200여명의 세계정상급 예술인들을 초대하여 일한여류문화교류시서화전을 열어 큰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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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오양심 시인과 일본의 고바야시 후요 서화가 등이 고야산대학교에서 한일관계 개선에 대하여 토론 하는 장면이다.

 

구말모회장은, 2019년 11월 11일 일본동경한국학교(일본본부)에서 ‘꿈 발표대전’을 할 때, 구행사(우리나라와 일본의 가교들) 이사장을 양아들이라고 오양심 이사장에게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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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말모(가운대)회장과 구행사(한국과 일본의 가교들)이사장과 오양심(한세연) 이사장이다. 

 

구행사는 일본인이었다. 그럼에도 구말모의 양아들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한국 이름까지 바꿨다.

 

구행사는 아버지(구말모)의 사상과 철학을 본받아 한일관계개선과 남북통일, 한글세계화의 뜻을 오양심 이사장과 같이 하기로 했다.


​■건강을 잃은 구말모가 일상을 시로 표현하다.

 

절대적인 시간을 살고 있다

구말모

 

일본 동경에서 혈액투석을 받고 있다 어쩔 수 없이 하루에 4시간씩 주 3회 열 두 시간을 받고 있다 혈액투석을 받는 동안 재일동포가 된 나에 대하여 내 조국 대한민국에 대하여 언제 누가 독립을 해 준다고 해서 독립선언문을 썼던 것이냐 독립을 해야겠기에 민족 대표 33인이 전국에 배포하고 낭독을 한 것이다

 

​언제 누가 통일을 시켜 준다고 통일 선언문을 쓰려고 했던 것이냐 지금 우리처럼 통일을 해야겠기에 통일 선언문을 쓰려고 했던 것이다 라고 말했던 독립운동가 도산(島山) 안창호에 대하여 역사학자 노산(鷺山) 이은상에 대해서도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다

 

혈액투석을 받지 않은 시간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지금은 태평양 유골 사진 밑에 한국어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주사바늘을 꽂고 있을 때는 조국을 생각할 수 있어서 좋고 주사바늘을 꽂지 않을 때는 조국을 위해 행동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내 생애 가장 기뻤던 날은 지난 이천일십삼년 십이월 내 나라의 서울 신촌 거구장에서 ‘이산 아리랑’ 출판기념회를 열었을 때, 이천일십오년 오월 일십육일 서울 백암아트홀에서, 분단 70년 광복 70년 기념 특별공연 '이산 아리랑 '을 연극으로 무대에 올렸을 때였다.

 

그때 나는 여러 지인들 앞에서 남북통일과 한일관계 개선 등의 업적으로 십년 후 그 장소에서 다시 만날 것을 호언장담했다 죄인도 아니면서 간첩누명을 쓴 채 반세기 동안이나 반신불수가 된 나는 그날의 공약을 위해 병실 안과 밖에서 절대적인 시간을 살고 있다.

 

■간첩 누명 씌운 조국, 버릴 수 없었다는/ 구말모의 자서전 이산아리랑 이모저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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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아리랑 자서전 표지이다.

 

1. 이산아리랑 서문, 겨레에게 바친 목숨 중에서

 

나는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다. 치욕적인 한일합방이후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부터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다. 일본에서는 한국 국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인 동료들과 함께 일본아이들에게 조센징이라는 멸시를 받으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학교에서는 날마다 허리와 마음과 정신에 칼을 차고 다니라는 무사도(武士道)를 가르쳐 주었지만 나는 언젠가는 한국인의 본때를 보여주리라 굳게 결심하고 조선(朝鮮)이라는 두 글자를 가슴에 비수로 꽂고 다녔다.

 

​나라는 되찾았으나 남과 북이 분단이 되어, 일본인에게 더 소외를 당한 우리 재일교포들을 모두 애국 애족하는 사람이 되게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한국인의 선구자가 되기 위해서, 열혈 애국청년이 되기 위해서는 차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날마다 건강한 육체로 건강한 정신을 가다듬었다. 일본의 명문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던 날, 나는 일본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다니고 있던 대사관 사증 담당 직을 마다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재일교포인 나는 일본에서 못다 한 공부를 마무리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고자, 내 조국 대한민국을 찾아온 그날 밤 가슴이 벅차서 잠을 설쳤다. 그때 연세대학교 교정은 참으로 아름답고 따뜻했으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멸시와 천대를 받지 않은 지상낙원이었다. 사랑과 평화가 공존하는 내 조국 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들을 보내며,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동안,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죄명으로, 감옥에 갇히는 날벼락을 당했다.

 

나의 조국 대한민국은 사나이 가슴에 두 번이나 대못을 박아주었다. 나라 잃은 설움을 안겨 준 조국은, 3·8선을 그어 놓고 간첩이라는 누명을 씌워준 조국은, 나에게 슬픔을 주었지만, 대한민국 뿌리를 갖고 태어난 나는, 조국을 버릴 수도 원망할 수도 없었다. 다만, 바다 ‘해(海)’자, 봉우리 ‘봉(峰)’자로, 바다에서 가장 높은 우두머리라는 뜻의 해봉(海峰)이라는 호를 묵묵하게 지었을 뿐이었다.

 

감옥에서 나가기만 하면, 현해탄을 오가며 한일 간의 갈등을 해소시키는 선구자가 되고 싶었다. 남북통일에 앞장서는 새 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불법구속과 감금으로 장기간의 징역살이에 시달려 한쪽 수족을 못쓰게 되었다.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갈수록, 눈빛만이 시퍼렇게 살아남은 나는 하느님께 “나로 인하여 한일관계를 개선시켜 재일교포 2세, 3세 등이 더 이상 한국인(韓國人)이라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해주옵소서.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만 목숨을 연장시켜 주옵소서. 겨레를 위하여 남은 生(생)을 바치게 해주시옵소서”하고 빌고 또 빌었다.


2. 구말모 출판기념회 장면의 이모저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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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아리랑 출판기념회에서 구말모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구말모의 자서전을 이산아리랑 연극으로 말하다.

 

2015년은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을 동시에 맞이하는 역사적인 해였다. 또한 한일수교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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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말모의 이산아리랑을 재구성하여 오양심제작, 김승덕연출로 ‘이산아리랑’을 무대에 올렸다. 

 

연극공연을 해야만 하는 목적은, 청소년과 대학생의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제고와 역사의 희생양이 된 선배들의 산 증언, 한일 간의 갈등해소와 이산가족 자유상봉 등 통일교육의 지침이 되고자 한 것이었다. 전국 지방순회공연과 17개 시·도 교육청의 추천을 받아 연극으로 ‘찾아가는 학교통일교육’을 확대하여 공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실천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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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아리랑 연극 공연장면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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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교포 구말모(한가운데)와 함께 연극이 끝나고 기념촬영 

 

‘연극 이산아리랑 구성원들’ 왼쪽부터 조연출 김현진, 연출 김승덕, 해봉아버지역 김상복, 영자역 이은서, 김희로역 손영호, 해봉어머니역 서민희, 젊은해봉 문상준, 원작자 해봉구말모, 늙은해봉 이석, 검사역 박근영, 검사관역 김명환, 여동생역 이혜린, 강이찌역 김진옥, 교도관역 이택우, 제작자 오양심, 해봉누나역 박소희, 프로듀서 온성균이다. 

 

- 다음은 구말모 작사 허대욱작곡 이혜린 노래의 ‘이산아리랑 주제곡’ 가사이다.

 

“이산 아리랑은 아픈 것이 아니야/ 이산 아리랑은 슬픈 것도 아니야/ 꿈에서도 보고 싶은 그리운 얼굴/ 꿈에서도 듣고 싶은 정겨운 목소리/ 이산 아리랑은 꿈의 아리랑/ 이산 아리랑은 희망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름다운 이곳으로/ 아리랑 고개를 모두 함께 넘어 오소//”

 

“이산 아리랑은 눈물이 아니야/ 이산 아리랑은 슬픔이 아니야/ 세상을 볼 줄 아는 눈에 문이야/ 세상을 열 줄 아는 마음에 문이야/ 이산 아리랑은 겨레아리랑/ 이산 아리랑은 통일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름다운 그곳으로/ 아리랑 고개를 우리 함께 넘어 가세//”

 

“이산 아리랑은 분단이 아니냐/ 이산 아리랑은 생이별 아니야/ 누구든 원하면 가볼 수 있어야해/ 언제든 원하면 만날 수 있어야해/ 자유 상봉 이제 우리가 하세/ 자유 통일 이제 우리가 하세/ 아리랑 아리랑 우리나라 금수강산/ 아리랑 고개를 넘어오고 넘어가세”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이산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이산아리랑”

 

■구말모, 재일 전남도민회 회장의 업적

 

재일 전남도민회는 1965년에 창립되었다. 현재 일본에 거주하는 전남 출생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년 신년, 송년 행사, 교민 화합 행사,를 갖고, 도민회 소식지를 발간하고 있다.

 

재일 전남도민회는 전남 출신 재일교포를 위하여 다양한 활동을 추진하고도 있다. 또한 매년 고향을 방문하는 계기를 마련하여 고향 방문을 장려하고 있다.

 

전남 도민회 회장인 구말모는 1984년 제1차 교포 2세와 3세의 고향방문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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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구말모 재일 전남도민회 회장이 도청을 방문하여 박준영도지사와 만나고 있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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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구말모 재일 전남도민회 회장이 2세 고향방문단과 전남도청을 방문 한 장면이다 

 

■구말모, 2012 여수세계박람회 홍보대사

 

구말모는 2012년 전라남도 여수 신항 일대에서 열린 국제박람회이다. 남해안 지역에 국제박람회를 유치함으로써 지역 및 국토 균형발전에 기여하고자 추진된 박람회다. 개최지는 전라남도 여수 신항 일대이며, 전시 면적 25만㎡와 지원 시설을 포함하여 총 면적이 271만㎡에 이른다. 주제는 '살아 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이다.

 

구말모는 재일도민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2012여수세계박람회 홍보대사 위촉받은 후, 여수세계박람회 홍보에 앞장섰으며, 한일 간 문화예술의 장을 열어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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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말모(오른쪽 두 번째)는, 2012여수세계박람회 홍보대사로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김충석 여수시장으로부터 「자랑스러운 여수인상」을 수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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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순천국제정원박람회‘고바야시 후요’ 서회전 개막식에서, 왼쪽 7째 줄부터 김충석 여수시장, 이희자 한국근우회회장, 조충훈 순천시장, 고바야시후요 일본서화가, 구말모 일본홍보대사, 오양심시인, 김용수시인 등이다.

 

■구말모,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홍보대사로 활약하다.

 

순천만정원박람회는 2013년 4~10월에 걸쳐 6개월간 열렸다. 순천시 도심의 산수(山水) 지형을 축소하여 조성한 정원이다. 총 면적은 92만 6992㎡이며, 순천동천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나뉘어 '꿈의다리'로 연결된다.

 

순천만국가정원에서 남쪽으로 5.8㎞ 거리에 순천만자연생태공원이 있다. 구말모는 재일도민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2013순천만정원박람회 홍보대사 위촉받은 후, 순천만정원박람회 홍보에 앞장섰으며, 한일 간 문화예술의 장을 열어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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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도민회 회장인 구말모(오른쪽 두 번째)가 조충훈 순천시장으로부터, 2013 순천만정원박람회 홍보대사 위촉장 수여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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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 김대희 의장 일행이 순천정원박람회 홍보차 일본 재일 도민회 신년회에 참석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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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한일예술제 일본에서 게재된 신문기사 내용이다. 

 

■구말모, 남북평화통일과 ‘겨레하나되기’‘원코리아’ 되는 것이 소원

 

​구말모가 평화통일연합회장이었을 때다. 2004년 7월 8일, 토쿄 젠닛쿠(全日空)호텔에서 재일동포 3,000여 명을 모셔 놓고 평화통일연합 창설대회를 열었다. 남·북한의 이념 대립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오직 원 코리아 운동으로 평화통일을 위하여 힘을 모은 행사였다.

 

이날 서영훈 前대한적십자 총재는 ‘한반도 남북통일의 전망과 재일동포의 역할’이란 주제로 축사했고, 김민하 전 중앙대 총장, 이경준 선문대 총장, 곽정환 초종교초국가평화의회(IIPC) 세계회장, 유대행 평화통일연합 상임고문, 오야마다 히데오 IIPC 일본 회장 등도 축사했다.

 

또한 일본의 현역 국회의원을 포함해 정치계와 사회계 인사들이 남북통일을 향하는 재일동포들의 새로운 출발을 빛내 주었다.

 

구말모는 “인류는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역사적인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해방 후 60년이 넘도록 대립과 갈등, 분열을 겪어온 재일동포들도, 다가오는 남북통일 시대를 대비하여 평화적, 발전적 통일을 이룩할 수 있도록 힘을 결집해야 할 시점에 왔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당면 과제는……,”이라는 인사말을 했다.

 

- 다음은 구말모의 위촉장 및 통일 활동에 대한 이모저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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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명 총재와 한학자 총재 양위분께 감사패를 전달받은 장면이다.(이옥희 부회장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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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7월 14일 ,조국통일기원제에서 구말모 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이날 행사장에는 민단계 동포 1천 1백여 명, 총련계 동포 1천 1백여 명이 참가했다. 

 

■구말모가 (사)아태평화교류협회와 함께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해를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치한 장면이다.

 

구말모가 병실에서 끝까지 심혈을 기울였던 일은 유해발굴이다.

 

그는 산문시에서, “혈액투석을 받지 않은 시간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지금은 태평양 유골 사진 밑에 한국어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주사바늘을 꽂고 있을 때는 조국을 생각할 수 있어서 좋고 주사바늘을 꽂지 않을 때는 조국을 위해 행동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시를 썼다.

 

구말모는 2012년 12월 28일, 천안 망향의 동산에서 (사)아태평화교류협회의 주최로 정부인사, 한국과 일본 측의 주요인사와 유족 등 200여명이 참석하여 유해 36위의 안치식을 거행했다.

 

36위는 태평양전쟁(1939~1945년)때 강제 연행되고 동원되어 억울하게 숨진, 이와키시 인근 탄광지역의 한국인 희생자 200~250명이 매장된 곳을 찾아내 발굴 봉환하여, 김포공항을 통해 고국의 품안에 안치했다.

 

그 외에도 구말모는 수년간 이어진 유해 발굴 작업을 했다.

 

​한국의 (사)아태평화교류협회 안부수 회장이 앞장섰고, 일본의 종교단체와 민간단체 그리고 이와키시 관계자들이 합심하여 추진했다.

 

2009년에는 110위의 희생자 유해를 봉환 안치했다. 2010년에는 31위의 희생자 유해를 봉환, 안치했다.

 

- 다음은 유해 봉환 안치의 이모저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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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수(왼쪽)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과 구말모(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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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수(왼쪽)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과 구말모(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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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 입국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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