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쓴 글] 친구를 보내고/ 이훈우

이훈우 2018-11-09 (금) 21:49 5년전 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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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우/ 동경한국학교 교감,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일본 본부장>

“야! 내캉 꿀밤 따러 갈래?”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내 친구는 여학생이만 하는 행동은 남자 같았다. 놀 때도 남자들과 더 잘 어울려 놀고, 하는 일도 힘쓰는 일을 더 잘 했다. 난 그런 그를 은근히 좋아했다. 그가 무슨 말을 걸어오면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하고, 지우개나 연필이 생기면 몰래 필통 속에 넣어주기도 했다.

나는 당시 동네에서 둘 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말썽쟁이였다. 쉬운 말로 골칫덩어리 골목대상이었던 셈이다. 어른들도 혀를 내 두를 정도로 여러 가지 나쁜 일들을 많이 일으키곤 했었다. 근데 항상 사건이 일어날 때는 친구가 내 옆에 있었다. 그 애는 내 그림자였고, 나는 그애의 그림자였다. 그런 그가 그날은 꿀밤을 따러 가자고 했다.

“그래 가자! 어데로 가꼬?”
“앞산으로 가재이. 거기 꿀밤 많다고 소문났던데........,”
“그라자!”

나는 망태를 메고, 친구는 막대기를 들고 앞산으로 향했다. 나무는 친구가 잘 오르기 때문에 나는 밑에서 떨어지는 꿀밤을 주었다. 친구는 꿀밤나무 위에 올라가서 막대기로 꿀밤을 털었다. 앞 산 중턱의 아름드리 꿀밤 나무를 선택해서 친구가 잽싸게 올라갔다.

“야! 이자부터 턴다, 잘 주워래이!”

친구의 말과 함께 후두둑 후두둑 잘 익은 꿀밤들이 마치 소나기가 오듯이 떨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아야!”

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툭!’
 
하고 뭔가 묵직한 것이 꿀밤나무 잎 위로 떨어졌다. 급하게 달려가 살펴보니 바로 내 친구가 아닌가?

‘이를 어째........!’

하는 생각을 하며 살펴보니 꿀밤을 털다가 말벌에 쏘인 것이다. 머리 주변에 두 세 방을 쏘인 것 같은데 벌써 울퉁불퉁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내 친구는 떨어질 때의 충격과 벌에 쏘인 아픔으로 의식을 잃고 있었다. 

‘우짜꼬? 우짜꼬?....!’

나는 겁도 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리 저리 안전부절 못하다가 우선 친구를 등에 업고 집으로 달렸다. 그 가파른 언덕길을 어떻게 내려왔는지 기억도 없다. 단지 얼굴 이곳저곳과 팔뚝 이곳저곳에 부딪히고 긁힌 아픔을 느끼면서 한 걸음에 달려 친구 집에 도착했다.

“ 어무이요! 친구가 벌에 쏘있어요!, 친구가 벌에 쏘있다카깨네요!”

그때 친구 어머니가 홀치기를 하다가 급하게 마루로 달려 나오셨다. 내 친구는 벌써 얼굴이 많이 부어있었고,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당황한 친구의 어머니는 부엌에서 찬 물을 아들의 얼굴에 끼얹고 말았다.

'그런데 그런데........!'

 

그 길로 친구는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다. 찬 물로 의한 갑작스런 쇼크로 심장이 멈춰버린 것이다. 부모보다 먼저 죽은 자식은 불효자식이라고 해서 아무도 보지 않는 저녁에 관에 넣지도 않은 채, 시신을 조그만 단지에 넣었다. 지게에 지고 가까운 산에 묻는다고 어른들이 말씀하셨다.

그날 밤 친구는 영원히 내 곁을 떠났다. 다음 날에는 꿀밤나무 근처에 잔디도 입히지 않은 빨간 황토 흙으로 만들어진 조그만 묘가 새로 만들어져 있었다(말썽쟁이 아이를 애물단지라고 하는데 애물단지란 부모보다 먼저 죽은 자식을 넣어 묻었던 단지를 말한다) 

나는 어른이 되고서야, 꿀벌은 한 번 공격하면 침이 빠져서 죽지만, 말벌은 몇 번이고 사람을 공격할 수 있고, 여러 번 쏘이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실제로 2006년 여름방학 때였다. 영어 캠프를 인솔했다가 말벌에 쏘여서 엠블런스에 실려가 현장의 병원에서 6일 동안 병원 신세만 지다가 돌아온 적이 있었다. 1990년 가을에는 한국의 팔공산에 등산을 갔다가 작은 벌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면서 목젖을 쏘였었다. 처음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렇지만 경험 많던 동행자가 사색이 되어서 얼른 나를 업고 택시가 있는 곳까지 내려와서 강제로 병원으로 보냈던 적이 있다.

처음에는 오버하는 것 아닌가 했는데 나중에 의사 선생님이

“조금만 더 지체했어도 기도가 막혀 위험 할 뻔 했습니다. 독이 속에서부터 퍼져서 큰일 날 뻔했네요. 이제는 살았고, 선생님 횡재했습니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목이 쉴 일을 없겠습니다.”

하고 말씀을 듣고 그 사람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 덕분인지 오늘날까지 매일매일 고함을 많이도 질렀는데도, 한 번도 목이 쉰 적이 없다. 

 

다만 오늘처럼 가을이 깊어가고 꿀밤이 뒹구는 계절이 되면 내 친구가 생각난다. 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으니까 겨우 10살이었다. 나는 땅에 그 애는 하늘에 있지만, 아마도 잘 지내고 있겠지, 내 친구도 가끔씩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