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을 읽는다] 한국고전 시가선/ 만리를 가는 글의 향기

김기원 2018-11-08 (목) 13:42 5년전 1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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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밝은 달밤에 / 밤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 들어와 자리를 보니 / 다리가 넷이로구나. / 둘은 내 것이지만 / 둘은 누구의 것인고? / 본디 내 것(아내)이다만 /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동경명기월랑야입이유항여가입랑사침의견곤각오이사시랑나이힐은오하어질고이힐은수지하언고본의오하시여마어은탈질랑을하여위뢰고,東京明期月良夜入伊遊行如可入良沙寢矣見昆脚烏伊四是良羅二肸隱吾下於叱古二肸隱誰支下焉古本矣吾下是如馬於隱奪叱良乙何如爲理古>


<김기원/ 공군방공포병학교 학교장, 공군대령>

‘꽃의 향기는 십리를 가고, 말의 향기는 백리를 가지만, 배품의 향기는 천리를 가고, 글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는 옛말이 있다. 고전 시가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시(詩)로 표현한 것이다.

처용이 밤늦도록 서울(경주)을 돌아다니며 놀다가 집으로 왔다. 방문을 열어보니 자기 잠자리에 웬 다른 남자가 들어와 아내와 동침을 하고 있었다. 처용은 화를 내기보다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물러 나왔다.

그때 아내를 품고 있던 자가 역신(전염병)으로 나타나서 처용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처용의 대범함에 감동하여 약속을 하나 했다. 처용의 형상이 있는 곳이면 그 문안에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다. 그 후부터 사람들은 처용의 얼굴을 대문 앞에 그려 붙여 역신의 방문을 피했다고 한다.

<한국고전 시가선>은 임형택 고미숙이 <창비>에서 출판했다. 신라의 향가로부터 고려속요, 경기체가, 소악부, 악장, 시조, 사설시조, 가사, 잡가, 민요까지 한자리에 엮어놓은 책이다. 작품마다 고어나 방언, 속어의 감칠맛을 현대어로 음미할 수 있다. 토속적인 시어에서 생경한 말맛이 좋고, 시가 담은 이야기는 정겨운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