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쓴 글] 피정 중에 만난 비/ 이훈우

이훈우 2018-11-06 (화) 04:17 5년전 667  

4633d0ee12a1cc2be79aa8077313ff18_1541445374_119.png
< 이훈우/ 동경한국학교 교감,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일본본부장>


일본의 여름은 어느 곳이나 무덥고 후덥지근하다.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는 아직 일본 생활에 익숙하지 못한 나를 더욱 당황하게 만들곤 한다.

다행히 나에게는 오늘처럼 평화로움을 주는 후지산(富士山) 근처의 피정지(避靜地)가 있다. 동경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아늑한 곳으로 머리가 복잡한 나를 언제나 반갑게 맞아준다.

처음 몇 번까지는 한밤중까지도 몰아치는 비 소리에 선잠을 깨기도 했고, 왠지 모를 이국의 두려움에 몸서리를 치기도 하며 적응 기간을 거쳤다. 하지만 이 곳을 좋아하게 된 것은 작은 오솔길이다.

먼저 다녀 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우거진 숲 사이의 작을 길을 걷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다시 나를 같은 자리에 서게 유혹한다. 새 소리, 풀벌레 소리, 물소리, 나뭇잎 소리들이 서로를 비교하거나 방해하지 않고 하나의 조화를 이루어 숲속의 오케스트라를 연주해 낸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숨 쉬고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작은 풀 속에서 피어난 꽃들은 자신만의 모습으로 품위를 유지하며 자태를 뽐내고, 우뚝 솟은 나무들은 당당함을 자랑한다. 질퍽한 땅 위에는 온갖 곤충들이 쉼터를 옮기느라 걸음을 재촉하고, 꽤 경사가 급한 계곡엔 수정 같은 물방울들이 언제나 같은 리듬을 맞추며 바위를 쓰다듬는다.

황혼이 되면 구름은 베일처럼 주위를 감싸고, 산은 더욱 깊은 침묵 속에서 숨을 쉰다. 이름 모를 풀벌레들이 불빛을 찾아 날아들기 시작하면 어디서부터인지 별들이 속삭임이 시작된다. 뒤이어 감자, 옥수수 삶은 구수한 향기가 지나가면 고요함 속에 또 하루를 마무리하게 한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머리가 혼란할 때면 이 곳을 찾는다. 오늘도 여기로 피정을 왔다.

살다보면 마음속까지 비가 내리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럴 땐 자연의 일부분으로서 마음의 고요를 누리고 침묵 속에서 기다리며 마음의 평화를 담아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모두가 잘 살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들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잘 산다는 의미가 서로서로 다르다. 어떤 이는 편하면 잘 사는 것이라 생각하고, 또 어떤 이는 많이 소유하면 잘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명예가 잘 사는 기준이 되기도 하고, 권력이 그 기준이 되기고 한다.

그렇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가장 많이 가진 자는 그것의 관리 때문에 걱정이 끝날 날이 없고, 명예는 그 나름대로 더 고귀한 명예를 위해 늘 미흡함을 느끼며 행여 읽을까 불안해서 근심이 따른다. 권력 또한 아침 이슬과 같이 사라짐을 심심치 않게 느끼고 보아온 일이다. 그러면 진정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할까?

중세문화를 탄생시킨 선구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잘 살지 않는다면 사는 것이 무슨 도움이 있으며, 잘 사는 것 또한 영원을 위해서 살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라고 했다.

영원은 무엇일까? 점을 이으면 선이 되고 선은 지구를 몇 바퀴를 돌아도 끝나지 않는다. 무한의 사선은 점과 점이 연결되었다면 영원은 바로 지금 이 순간순간의 점철이 아닌가! 순간순간을 참되고 아름답게 사는 것이 바로 진정으로 잘 사는 길이며, 지금 내게 주어진 오늘을 부끄럼 없이 소중한 삶으로 엮어 내는 것이야 말로 영원을 위해서 사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누구나 느끼는 일이지만 어릴 때 하나씩 하나씩 익혀나가는 말이나 예상  외의 행동들을 보면서, 내 아이는 특별한 아이라는 착각에 빠졌던 경험들이 한두 번쯤은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 귀엽고 주위 사람들을 놀하게 하던 일들도 학교에 들어가면서 좀 빠르고 늦은 차이는 있겠지만 곧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지나친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의 성장이란 것이, 부모의 기대나 목표치에서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과정은 아닐까?

교사 생활을 하면서 곤혹스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은 내 아이만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부모들을 접할 때이다. 내 아이는 특별한 인정과 대우가 주어져야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에게 아이들의 실체를 깨닫게 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과 시간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혼돈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내 아이를 가장 특별한 아이로 키우기보다 가장 평범한 아이로 세상에 서게 할 때 그 아이는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느끼는 사람으로 자라지 않을까? 생각에 젖어있는데 밖에는 비가 그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