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양심/ 시인,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이사장
세 살 때였다.
나는 둠벙에 빠져서
개구리처럼 사지를 쭉 뻗은 채 물위에
둥둥 떠서 죽고 말았다. 어른들의 지혜로
잿속에 파묻혔다가 사흘 만에 겨우 되살아났다
그때부터 먹는 것이 시원치 않았다.
장종지에 담은 밥을 머리에 이고 대문
앞에 꾸그리고 앉아 새처럼 한 알씩 주워 먹었다.
피골이 상접한 나를 본 이웃들은 “하루에
밥을 아홉 번 먹은 가이네” 라고 놀렸다
기력이 부족한 나는 책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넋을 잃어갔다.
‘성냥팔이 소녀’를 읽었을 때였다.
소녀가 엄동설한에 처마 밑에서
얼어 죽었을 때 내가 죽는 것 같았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
라는 책을 읽었을 때는
주인공의 삶이 팍팍하고
울퉁불퉁해서 그 애보다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았다
사춘기 때는 하루 세 번 무서웠다.
아슴푸레한 저녁에 땅거미가 올라올 때
굴뚝연기가 머리를 풀고 하늘로 올라갈 때
잠자리에 들 때였다. 나의 목숨 나의 사랑
나의 꿈이 송두리째 접힐 것 같아 아찔했다
꿈에 의해 꿈이
고사당하고 꿈에 의해
꿈이 궁지에 몰리는 메마른
세상에서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내가 이렇게 오래 살줄을 몰랐다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서
글자가 없었던 우리나라를 위해서
세종대왕님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까닭을 안
그날부터 한글세계화에 목숨을 바치게 될 줄을 몰랐다
"한글로 문맹을 퇴치하자"고
"한글로 문화강국을 만들자"고
나팔수가 되어 국경을 넘나들 줄을 몰랐다
한글로 경제대국을 만들기 위해
온 세상을 아도치고 다닐 줄을 정말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