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읽는 편지] 첫사랑/ 정현우

김인수 2018-10-28 (일) 19:39 5년전 713  


 

논물 보러 갔다가 계집애를 만났습니다. 까까머리 시절 여름 방학 때였습니다. 나는 논둑에 앉아 맹호부대 군가를 부르며 종아리에 붙은 거머리를 떼어내고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계집애가 인기척도 없이 낮달처럼 등 뒤에 떠 있었습니다. 물 건너 마을로 이사를 왔다고

나는 아무 말 없이 계집애의 논으로 물꼬를 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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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仁山)편지 중에서/ 김인수 시인. 육군훈련소 참모장 준장>


소중한 하루, 첫 날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다시'라는 표현 속에서 새로운 힘이 솟아납니다. '다시'라는 말 속에는 지난 시간들 속의 아쉬움, 미련 등을 털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주어지는 선물인 '오늘' 하루에 집중을 하다 보니 밤이 되면 스스로 하루를 돌아보는, 이른바 바둑에서 말하는 복기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그게 제가 늘 말씀드리는 성찰의 시간입니다. 짧게나마 그 시간을 가짐으로 하루는 비로소 끝을 맺습니다.

서두에 아쉬움, 미련 등의 단어를 언급했지만, 솔직히 말씀드려서 우리가 보내고 있는 하루 하루의 삶에서 아쉬움, 미련 등이 크게 자리 잡고 있을 이유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여전히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이 하루가 내일에도 여전히 반복될 거라는 강한, 정말 근거 없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 믿음이 있기에 비록 부족했을지라도 그리 문제가 될 것이 없고, 많이 아쉬울지라도 이해가 되고 용서를 할 수 있을 정도까지 자기 자신을 다독입니다. 그 다독임이 우리의 삶을 이끕니다. 언제라도 만회할 수 있다는,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으로 말입니다.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노래한 '카르페 디엠'도 할 수 있다면 내일에 대한 믿음일랑은 버리라고 딱 잘라서 말할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오늘이라는 날의 끝자락 한 구석에는 반드시 이 믿음과 희망의 끈을 붙들어 매어 놓아야만 할 거라 생각합니다. 호라티우스가 노래한 속뜻은 분명 그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