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수필] 순천문학상과 “마음”의 시를 쓴 김영재

오양심 2018-10-19 (금) 16:11 5년전 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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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수 시인> 

 

연필을 날카롭게 깍지는 않아야겠다
끝이 너무 뾰쭉해서 글씨가 섬뜩하다
뭉툭한 연필심으로 마음이라 써본다
쓰면 쓸수록 연필심이 둥글어지고
마음도 밖으로 나와 백지 위를 구른다
아이들 신나게 차는 공처럼 대굴거린다

(김영재 시인의 “마음”시 전문)

동심이 우러나는 시다. 아니다. 뭉툭해진 연필심처럼 둥글어지는 마음이 백지 위를 구르면서 공처럼 신나게 대굴거리는 삶을 노래하는 작품이다. 자신의 마음을 연필심으로 표출하면서 각박한 삶을 헤쳐 나가는 김영재 시인의 단면을 보여준 시가 아닐까 싶다.

지난 12일이었다. 필자는 김수자 회장의 초청으로 순천문학상시상식에 초대되어 그 분위기와 수상자의 수상소감을 지켜보았다.

제15회를 맞이한 순천문학시상식은 대성황이었다. 산을 좋아하고 물을 사랑하는 수상자의 마음처럼 시상식분위기는 차분하면서도 따뜻했다. 순천문인들을 비롯한 전국에서 찾아온 문인들, 그리고 하객들의 정담소리와 박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김 시인의 이면에는 외롭고 쓸쓸한 삶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서정의 세계가 담겨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지금도 더듬고 있었다. 마음에 묻은 어머니와 여동생, 수몰된 고향 길에 대한 기억, 길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눈물이 많다고 소문난 김영재시인, 그는 참으로 인간미가 넘쳐흘렀고 아름다운 삶을 지녔었다. 그는 수상소감에서 잃어버린 고향이야기와 가정사를 들먹이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고향을 물속에 묻고, 어머니와 여동생을 가슴에 묻고 마음의 뿌리를 내리지 못해 떠돌았다며 울먹거렸다. 그는 인자무적이었다. 아름다운 심성을 지녔다. 카리스마가 있었다. 자신이 지닌 소신과 철학이 있었다. 

언제인가 인자무적이라는 한자어를 풀이해 본적이 있었다. 어질 인(仁) 놈 자(者) 없을 무(無) 원수 적(敵)으로 어진사람은 사람들을 배려하고 사랑해서 천하에 적대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아마도 그가 산과 물을 좋아하는 까닭도 인자무적의 뿌리가 아닐까 싶다.

사실 그날 밤은 농익은 대화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와 K시인 그리고 필자만이 자리한 순천 아래시장의 술자리는 노익장을 과시하는 자리였다. 술기가 서서히 올라올 즈음, 그는 말했다. 지금부터서라도 끈적끈적한 “고향의 정”과 입맛이 척척 감기는 “오누이의 손맛” 그리고 약간의 미를 곁들인 “운치의 멋”을 버물리는 작업을 소홀히 여기지 않겠다고 말이다. 게다가 그는 소소한 일과 길에서 얻어진 재료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 이면을 그리는 작업을 했다. 특히 그 작업 속에는 우리들의 삶과 문학이라는 단어가 숨 쉬고 있었다.

그의 “마음”이라는 시편처럼 순천문학상은 뭉툭한 연필심이었음 좋겠다. 서로의 마음이 둥글둥글하게 전해지고 펼쳐지는 사회로 변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제15회째 문학상을 치루는 동안 순천문학 동아리회원들은 물론 특정인들의 출혈은 심했었다. 외부인들의 기부금을 비롯해 찬조금 등 순천문학상을 유지하는 비용들이 만만치 않았으리라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시행하고 있는 순천문학상에 다시 한 번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한 번쯤 생각해 볼일이다. 순천시와 순천시민을 상징하는 순천문학상을 순천문학동아리에서  관장하고 그에 따른 상금과 비용을 지출한다는 것은 뭔가 잘못된 일이 아닐까 싶다. 순천을 상징하고 순천의 문학을 널리 알리려는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민보다는 관이 주도하는 상금제도가 훨씬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는 순천문학동아리에서 시행해 왔지만 제정여건과 여러 사안을 감안한다면 순천시에서 관장하고 순천문학동아리의 협조를 얻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후담이지만 이번, 제15회 순천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상금일부를 동료문인에게 기부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참으로 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실적으로 문인들의 삶은 어렵다. 대다수가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며 글을 쓰고 있는 문인들을 생각한다면 연필심 같은 마음일 것이다. 언행일치를 하고 있는 김영재 시인의 건강과 안녕을 빌고 빌면서 필자의 졸시를 게재해 본다.

뒷산 밤나무 벙글벙글
누런 알밤이 토실토실
가시가 쑤셔대는 밤송이 깐다
아픈 손가락을 후후 불면서 깐다
밤색 머금은 밤빛깔이 곱다
그 빛깔 버리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껍질은 까야 한다
아! 또 한 겹의 비늘이 있다
손칼로 깍을까
부엌칼로 깍을까
망설이다 연필칼로 깍았다
알밤 깍는 연필칼
예리하다
무딘 삶도 깍아야 한다
누이는 말한다
알밤 깍는 그 소리
알밤 먹는 그 맛을
엄마는 웃는다
동지섣달 긴긴밤
원고 쓰는 칼바람을
깍아 대는 그 칼바람을

(김용수의 시 “밤을 깍다가”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