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양심 수필] 엄마의 마음

오양심 2022-01-18 (화) 10:19 2년전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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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양심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쯤, 지구촌을 뒤흔드는 뉴스가 있었다. 북한의 조선중앙 TV에서 아나운서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면서

“조선인민군 최고 사령관이신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2011년 12월 17일 8시 30분에 현지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시었다……,”

하고 발표한 일이었다.

 

​수십 년간 북한을 통치해온 김정일 국방 위원장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더 간담을 서늘하게 한 일은, 그의 아들 김정은이, 이제 막 인생을 배우고 익힐 젊은 나이에, 버거운 국가수장의 권력을 이어받은 일이었다.

 

김정은이 아버지를 여윈 그 나이에 나는, 어머니를 여의었다. “신산 앞바다에 파도로 밀려와/ 흰 거품으로 자지러질 때마다/ 나는 짐승처럼 꺽꺽이었다//뭍의 길이 끝난 그날부터/ 남해에 묻힌 바닷길/ 그 길을 몰라 갯가에 주저앉았다// 둘째딸 시집도 못 보내고/ 만장 앞세워 홀로 떠나신 어머니/ 상여 뒤에 바다는 그저 비어있었다// 이제 그 바다/ 어머니의 길이 되어/ 밤이면 내게 와서 파도로 부서진다”는 시(詩)를 ‘만장’이라는 제목을 써서 그리움을 달랬다.

 

​혼기를 놓친 나이에 나는 결혼을 했다. 북한의 김정은과 같은 또래의 아들도 두었다. 하지만 나는 아들을 자주 볼 수가 없었다. 아들이 외국에서 생활하기 때문이었다.

 

김정은이 북한의 국가수장이 되던 날, 나는 TV 화면에 비친 김정은이 우리 아들인줄 알고 눈을 의심했다. 몸무게가 130킬로를 웃돌았던, 인물도 훤칠한 할아버지를 쏙 빼닮은 우리 아들은, 김정은과 생김새와 몸집이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날 나는 남편에게 “김정은이 우리 아들과 똑 같지?”

하고 물었지만 평소에도 말이 없는 남편은 그냥 웃었다. 내가 재차 물으니까

“허허!, 비슷하기는 하네”

하고 웃음으로 동조하면서 단문으로 대답했다.

 

그날부터 나는 내 아들, 남의 아들 가리지 않고, 두 아들을 위해서 또한 이 세상의 모든 아들들을 위해서 아침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절치부심(切齒腐心)기도를 했다. TV에서 북한 아들을 볼 때마다, 남한의 우리 아들은 본 것처럼 기뻤다.더 좋았던 것은 이천 일십 팔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때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멀다고 말하면 안되갓구나!"

하고 말하며 지구촌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방명록에는

“새로운 력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력사의 출발점에서”

 

라고 써놓고, 문재인대통령과 활짝 웃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남북정상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 있는 평화의 집 부근의 도보다리를 걸어가서 밀담을 나누었던 그 다리는, 견우직녀 설화에 등장하는 오작교였다. 남북한의 평화 그 새로운 시작을 두 정상은, 한국어로 알렸고, 우리는 머지않아 남북평화통일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 내리사랑으로 이어졌는지, 하늘나라에 계시는 엄마에게서 편지가 왔다.

 

​딸아!

누구나 힘든 일을 겪지만 극복하면 더 성숙된 삶을 살 수가 있다. 좌절을 맛본 사람만이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단다.

 

​이 엄마도 네 할머니에게서 배운 대로 새벽마다 정화수에 물을 떠놓고 천지인에게 세 번 절을 했다. 그런 다음 두 무릎을 끓고 이 세상에 있는 생명들이 행복하게 해달라고,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슬프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부탁을 했다. 우주에 있는 온갖 사물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을 주셔서 고맙다고도 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어색할 때도 있었지만 일단 마음을 비웠다. 그랬더니 집밖으로 나와서도 동서남북 사방에다가 절을 하고 싶어지더구나. 꽃을 만나면 꽃에게, 나무를 만나면 나무에게, 머리를 들면 하늘에게, 머리를 숙이면 땅에게 고맙다는 말이, 감사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더구나. 하루하루 행동으로 옮기다보니 이승을 떠날 때까지 습관이 되었단다.

 

​‘근주자적근묵자흑(近朱者赤近墨者黑)’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붉은 색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붉게 물들고, 먹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검게 물든다는 뜻으로, 착한 사람과 사귀면 착해지고, 악한 사람과 사귀면 악해짐에 비유하는 말이다.

 

​좋은 것을 생각하면 좋은 일이 생긴단다. 좋은 일이 생기려면 뼈를 깎는 마음공부가 필요하단다. 우주는 공평해서 약하고 볼품없는 우리 딸을 이 세상에서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그동안 고된 훈련을 시켰던 것이란다. 하늘이 네 안에 그리고 대문 안에 스승을 내려 주신 것도 그 때문이란다. 이 엄마가 단명을 한 이유도, 우리 딸의 마음공부에 한 부분을 거들었단다. 혹독한 훈련을 받는 동안 많이 힘들었지?

 

우리 딸은 항상 긍정적인 생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우주를 돌아다니는 비슷한 종류와 인연이 될 것이다. 아니다. 우주는 따로 없단다. 우주가 바로 네 마음이란다. 어느 순간부터 우주와 네가 하나가 되어 언행을 일치할 것이다. 항상 좋은 일이 너를 따라 다닐 것이다.

 

딸아! 네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이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너도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천지신명과 삼라만상에게 절을 하면서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절치부심(切齒腐心), 두 손을 모았던 것이 재산이 되고 있구나! 기쁨의 새날을 열 수 있는 열쇠도, 조만간 만들어질 것이라고 이 엄마는 믿고 있다.

 

“우리 할머니가 하늘에서 그러했듯이/ 우리 어머니가 땅에서도 그러했듯이/ 아침에 일어나면 정화수를 떠놓고/ 남쪽하늘을 향해 절을 합니다/ 나의 기도가 닿은 곳은 모두 꽃밭이 되게 해달라고/ 밝은 햇빛 속에서 넘치는 사랑이 되게 해달라고/ 살아있어서 더 눈부신 세상이 되게 해달라고/ 고통과 슬픔은 사라지고// 오직 기쁨의 새날만이 있게 해달라고/ 있게 해달라고”

 

“어이! 아침이네 일어나소”

남편이 흔들어 깨운다. 어머니에게 편지를 받은 것도 편지를 읽은 것도 꿈속이었다. 베개 맡에 놓여있는 스마트 폰을 연 순간, 새해 들어 네 번째 미사일 발사이다. 평안북도 의주 일대에서 두발을 발사한 지 사흘 만이다. 북한은 이보다 앞서 자강도 일대에서도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는 기사로 도배가 되어있다. 불안하다. 얼마나 살기가 힘들었으면, 미사일을 연달아 발사해서 속마음을 표현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목구멍이 치밀어 오른다. 

 

“어머니! 자식이 힘들면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고 했나요?”

 

아들이, 우리 아들이,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부디 무사하게 해달라고, 우리나라가 하루빨리 통일이 되게 해달라고, 나는 천상에 계신 어머니께 간절하게 부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