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시집> 가을 꽃자리/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제8회 세계한글글쓰기대전 선한이웃 100인이 엮은

오양심 2021-11-30 (화) 18:50 2년전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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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꽃자리

저자

선한이웃 100

출판

한글세계 2021.10.30

주문 010-2975-4624

도서

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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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가족사진/ 최옥명

 

뇌경색이여

풍 맞은 거지 뭐

오른쪽이 마비되었어

걷지도 못했는데 많이 좋아졌어

 

곧 집에 갈 거여

멀지 않은 안성이여

집사람이 기다리고 있어

딸내미 하나는 시집가고 없어

 

사람 구실을 못하니까

항상 미안하지 뭐

정상적인 활동을 해서

아내에게 잘해주고 싶어

 

가족이

보고 싶어도

사진 찍어놓은 것이 없어

집에 가면 사진부터 찍을 거야

 

 

(수필) 고난도 유익이더라/ 윤종순

 

한글날 575돌이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한글을 창제해주신 세종대왕을 생각한다. 지금 지구촌에서는 한글 예찬이 끝없다. 하지만 한글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진 세월을 보내야 했다.

 

한글이 국문으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것은, 반포 450년 후인 갑오경장 때 일이다. 일제강점기에도 말과 글을 빼앗기는 갖은 수모를 겪었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한글이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지구촌 문맹을 퇴치하고 있다는 일이다.

 

‘고난이 유익(시편 117편 71절)’이라는 성경 구절이 있다. 한글의 수난 시대를 생각하며, 고난이 유익이라는 말을 되새김질하며, 고난을 통해 지혜를 얻고,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내가 생활하고 있는 꽃자리에서 한글을 사랑하고, 한글 선교로 헌신하는 일꾼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하루를 여는 첫 시간에 한글로 글을 쓸 수 있어서 행복하다. 한국어로 말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세종대왕을 생각하면서,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나면, 온몸에 새 힘이 솟는다.

 

곧장 병원 뒷문을 열고 텃밭으로 바쁜 걸음을 옮긴다. 키가 크고 잘 생긴 해바라기가 금빛 햇살을 머금고 손을 흔들어준다.

 

“해바라기야 잘 잤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실방실 웃어준다.

 

“고추야 잘 있었니?”

 

잎사귀 뒤에 숨어 있던 파랗고 빨간 고추들이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하루 만에 많이 컸구나!”

 

칭찬을 해주면 잘 익은 호박이 물씬물씬 단내를 풍겨준다.

 

배추, 무, 상추, 부추, 아욱, 쑥갓, 시금치, 고구마 등이 텃밭에 즐비하다. 이곳 선한요양원장선생님의 철칙이 자급자족하는 것이기 때문에, 몸이 덜 불편한 환자들의 손놀림이 바쁘기도 한 덕분이다.

 

‘인생칠십고래희’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칠십을 살기는 드문 일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100세 시대에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흔하게 쓴다. 무엇인가를 시작하거나 시도할 때 나이는 핑계가 될 수 없다는 뜻이고, 나이가 들었다고 모두 어른이 아니라는 지혜가 담긴 뜻이다. 하지만 죽는 날까지 지혜로운 어른이 되는 일은 쉽지 않다.

 

내 나이 벌써 일흔하나이다. 옛사람들이 환갑잔치를 하면서, 입버릇처럼 칠십을 살기는 드문 일이라는 그 칠십 고개를 지금 넘어가고는 있다. 하지만 지혜로운 어른이 되기도 전에,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 년째 혈액투석을 하며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오늘은 한글날이라서 그런지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서 문자와 서로 통하지 못하니,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끝내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안타깝게 여겨서 새로 28자를 만드니,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사용함에 편하게 하고자 함일 뿐이다.”라는 학창시절에 외우곤 했던 훈민정음 서문이, 거미 똥구멍에서 줄 나오듯이 줄줄줄 입 밖으로 잘도 쏟아져 나온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는, 혈액투석을 하기 전에는, 먹고 사는 일에 바빠서, 한글이 그리고 자연이 고맙고 소중한 줄을 몰랐다. 선한이웃요양병원은 사방으로 산이 둘러쳐져 있고, 나무가 많아서, 공기가 맑다. 새소리 바람 소리가 포근하게 감싸준다.

 

몸은 비록 힘들지만, 자연 속에 파묻혀 있으니 오늘은 걱정이 없다. 다만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사하다고 두 손을 모은다. 나무를 만나면 나무 밑에서 감사하다고 두 손을 모은다. 이리 봐도 감사, 저리 봐도 감사, 천지간을 향할 때마다, 입을 열기만 하면 감사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하루걸러 5시간 혈액투석을 하는 시간 외에는 날마다 바쁘다. 같은 병실에 계시는 어르신들의 새참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추와 부추, 호박을 썰어 넣고, 방아 잎도 한 주먹 따서 썰어 넣고, 달걀 몇 개 깨서 밀가루에 풀어 넣어 부침개를 부치면, 먹기도 전에 고소한 냄새가 침샘을 자극한다.

 

이곳에 오길 참으로 잘했다. 앉은 자리 선 자리를 내가 만들어가는 꽃자리라서, 집보다 좋다. 동병상련이라고 몸이 아파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좋다. 주위의 어르신들과 지혜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텃밭에서 가꾼 건강식품을 사시사철 나누어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연로하시고, 몸이 불편한 분들의 수발을 들어드릴 수 있어서 더 좋다. 선한이웃사랑병원에서는 만나는 얼굴마다,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기쁨이 있고 위로가 있다. 사랑이 차고 넘친다.

 

오늘은 세종대왕님이 한글을 창제한 지 575년이 되는 날이다. 한글이 고난의 세월을 지나 인류문화유산이 된 것처럼, 깨지고 터지고 상처투성이가 된 내가, 혈액투석을 하면서도 안정을 되찾은 것처럼, 이제는 나의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한글을 선교하는 사명감으로 살고 싶다. 이곳에서 시를 쓰면서, 시 낭송을 하면서, 함께 기도하면서, 어르신들의 웃음꽃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