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양심 수필] 추석에 고향을 생각하며

오양심 2021-09-29 (수) 03:22 2년전 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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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양심/ 시인,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이사장

 

타향도 정이 들면/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말을 했던가/ 바보처럼 - 생략이 노래는 남국인 작사 작곡의 고향이 좋아이다. 1970년대에 가수 김상진, 박일남, 나훈아 등이 불러서 크게 히트시킨 곡이다. 또한 전쟁 후 혹독한 가난을 겪은 베이비 부머들이, 타향살이를 하던 시절,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목 메이게 부르던 노래이다.

 

그렇다. 고향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이고, 태어나서 자란 곳이고,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이다. 한마디로 고향은 사랑이 있는 시간과 공간이다. 고향이 그립다는 것은 고향 집, 고향 마을, 고향 산천, 고향 사람, 고향에 묻혀있는 조상님들, 고향에서 객지에 나와 있는 사람들까지의 공간을 잊을 수 없다는 뜻이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19의 팬더믹 전쟁 중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우리가 천만 명 민족대이동을 감수하면서 고향에 가고 있는 것은, 아직도 사랑할 것들이 남아 있어서이다. 사랑은 큰일이 아니다. 관심을 가지고 걱정이라도 해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작고 소소한 일이다. 오곡백과가 무르익은 올 추석에도 코로라 속 위기를 무릅쓰고 여지없이 민족대이동을 한 것은, 고향의 모든 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추석을 맞이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벌초이다. 자손의 도리로 효성을 다하기 위해 조상의 묘에 자란 잡초를 베고, 묘 주위를 정리하는 풍속으로 백중 이후인 칠월 말부터 추석 이전에 이루어진다. 예전에는 문중 사람들이 벌초를 책임지고 했다. 그 후에 일가친척들은 마을 젊은이들에게 술값이나 밥값을 주고 맡기는 형태가 많았다. 지금은 고향에 계신 분들이 늙으신 까닭에, 벌초 대행 전문업체에 맡기는 실정이다.

 

추석날 아침에는 차례를 지낸다. 조상의 덕을 추모하고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겠다는 축원이다. 차례상에는 햇곡을 올린다. 차례를 지낸 뒤 음복을 하고 조상의 산소에 가서 성묘한다. 그 후에는 집 집마다 음식을 나누어 먹는 풍속이 있었다. 정성껏 차린 음식들을 예쁘게 담아, 아이들이 분주히 이웃집을 오갔는데, 이제는 그 풍습마저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고향에서 죽고 싶다는 심정은, 사랑 속에 잠들고 싶다는 마지막 소원이 아닐까?

 

내가 태어났을 때, 큰아버지와 둘째 큰아버지는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하는 분이셨다. 풀을 깔깔하게 멕인 흰옷을 입은 두 분은 학처럼 고우셨다. 큰집에서 차례를 지낼 때는 좋은 가문에서 나고 자란 긍지때문인지 저절로 목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어르신들은 부모님을 공경해야 한다든가, 형제간에는 우애 있게 지내야 한다는 등 생활속에서 꼭 실천해야 할 여러 교훈을 가르쳐 주셨다. 방문을 닫고 나올 때는, 엉덩이가 보이지 않게 뒷걸음으로 나와서, 마루에서 큰 절을 하고 대문을 나섰다. 골목길을 걸으면서 배운 교훈을, 되새김질하곤 했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었다. 퇴근 후 저녁 밥상을 물리고 나면, 자식 여섯 명을 방안에 빙 둘러앉혀 놓고, 여러가지를 가르쳐 주셨다. 책을 손에서 놓지 마라, 책 속에는 길이 있고, 인생이 있고, 현인을 만날 수 있는 진리가 있단다. 공부 잘하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지각이나 결석을 하지 않으면 성실해진단다.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라. 남을 먼저 생각하다 보면 나누고 섬기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단다. 하루도 빠짐없이 글쓰기에 전념해라. 일기를 모은 자서전은 인류에게 남겨줄 역사가 된단다.

 

인생은 짧다. 흰날을 허송하지 마라. 나만 생각하고 내 가족만 생각하면 그만큼 밖에 성장하지 못한단다. 친구들과 더불어 사이좋게 지내고, 이웃과도 친하게 지내고, 좋은 직장을 만들고, 열심히 일해서 사회에 봉사해라. 그 직장의 주인이 되면서부터는 저절로 생각이 커진단다. 이웃과 사회와 국가 그리고 그 너머를 걱정하면서 살면, 너희도 모르게 우리나라는 물론 이웃 나라를 생각하게 된단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생각하게 되고, 지구촌을 생각하게 되는 큰 눈이 떠진단다하고 밤이 늦도록 공부를 가르쳐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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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삼식이 친필로 엮은 추구집1이다.(오양심의 아버지)

 

 

아버지는 한글과 한자를 섞어서 쓴 사자소학과 명심보감을 책으로 엮어 주셨다. 그 내용은, 반드시 배워서 지켜야 할 일상생활의 규범, 효도, 윤리 도덕, 어른을 공경하는 법, 선현들의 금언과 명구 등이었다.

 

그 책 속에는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만 하신 큰아버지 둘째큰아버지 두 분이 가르쳐 주신 교훈이, 아버지가 저녁마다 가르쳐 주셨던 생활에 지침이 될 만한 교훈이 낱낱이 적혀있었다. 청소년들이 꼭 실천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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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삼식이 친필로 엮은 추구집2이다.(오양심의 아버지)

 

그 이외도 아버지는, 우리의 조상님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가르쳐준 속담, 풍자, 해학, 명언 등 오언시(다섯 글자로 된 시)의 중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추구집을 친필로 엮어서, 한글교육과 한문교육을 가르쳐 주셨다. 정서함양을 위한 평생 공부와 인류의 역사에 남는 글쓰기로 모범을 보여 주셨다.

 

훗날 내가 대학 교단에 서서 가르치며 배우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을 할 때,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사자소학과 명심보감과 추구집은, 내리사랑의 본보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아버지!

오늘은 추석입니다.

그 옛날 시끌벅적한 세시풍속은

이제 이 땅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코로나19 전염병 확산으로 세상이 어수선합니다.

다만 당신이 가르쳐준 그대로

두 무릎을 꿇고 천지사방을 향해 기도합니다

나의 기도가 닿은 곳은

모두 꽃밭이 되게 해달라고

밝은 햇빛 속에서 넘치는 사랑이 되게 해달라고

살아있어서 더 눈부신 세상이 되게 해달라고

이 세상의 고통과 슬픔은 사라지고

오직 기쁨의 새날만 있게 해달라고

새날만 있게 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