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강사의 수필)첫눈과 장학금에 대한 눈물어린 추억

김우영 2020-12-14 (월) 12:05 3년전 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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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 진종순 한국어강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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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눈이 오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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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바람이 차다. 그래도 새벽바람을 가르며 운동은 이어진다. 여전히 운동하러 나오는 사람들은 어둠 속에 스쳐도 낯익은 모습들이다. 모두 로봇처럼 두껍게 옷을 입었는데도 말이다.


  오늘 첫눈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어서 이 새벽에 혹시나 내리려나 했는데 정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들뜬 마음에 운동을 마치고 운동 중에 만난 분들과 가까운 곳에서 해장국을 먹기로 했다. 새벽부터 운영하는 소머리국밥식당을 갔는데 기다리는 동안 잠시 생각에 젖었다.   친정 아버지는 소머리국밥을 좋아하셨다. 어쩌다 국밥이 생각이 나면 논산 시내로 나오셨다. 시골에서 버스를 타고 와 딸내미 가게에 들르는데 여자들이 드나드는 가게이니 잠시 머물다 곧바로 나가셨다. 난 뒤쫓아나가며 말했다.

  "아버지, 소머리국밥 드시고 오세요?"

  "나 돈 있다."

  하며 사양을 하셨다. 그래도 호주머니에 넣어드리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고맙다." 

   몇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난 많은 후회가 들었다.

  ‘어찌 잠깐 가게를 닫고 아버지와 함께 소머리국밥을 먹을 생각을 한 번도 못했을까…?“

  아마도 아버진 이 딸과 함께 따끈한 국밥을 나누고 싶었을 것 같다. 국밥집 창밖은 첫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첫눈을 보면 첫사랑이 생각난다고들 하는데 난 아버지 생각에 아버지가 더 그리워진다.

  후회의 생각들이 밀물처럼 밀려오면서 문득 조선조 학자 ‘율곡 이이’의 어록이 생각난다.

  “천하의 모든 물건 중에는 내 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다. 그런데 이 몸은 부모가 주신 것이다.” 

 안개 낀 새벽에  새벽에 밖을 보니 안개가 잔뜩 끼어 있다. 운동을 접고 내일 새벽에 가려던 시댁과 친정에 가야겠다고 방향을 정하고 나섰다. 막상 나서니 너무나 진하게 낀 안개가 시야를 가린다. 그래도 나에게 주어지는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다.

  일요일은 손님이 더 줄어서 새벽에 단풍구경을 하기도 했고 혹시나 하며 나의 방문을 기다리는 어른들께도 일요일 이 시간을 이용해 간다. 내일 가려던 것을 당겨서 오늘은 미리 갔는데 먼저 시댁에 도착해 문을 열기도 전에 시어머니는 문에 비치는 그림자를 보고 말씀하신다.

  "우리 며느리 오네!"

  추석 때 뵌 이후 한 달 반 만이다. 지난 어버이날에 양가의 어머님들께 침향단을 사드렸더니 드시고 난 후 좋다고 하기에 중간에 사드리고 오늘 다시 사가지고 갔다. 고맙다고 몇 번이나 하신다.   안개속에서 친정으로 향하며 2016년 우리 학교 학생회보 창간호에 실렸던 글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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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어머님이 주신 눈물의 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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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다문화 한국어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충남 논산 거주 진종순입니다. 저는 저의 시어머님을 자랑하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의 시어머님은 요즈음 보통의 어르신들처럼 시골에서 홀로 지내는데 몸이 불편하신데도 김장김치 등을 담가 주신답니다.


  저는 가끔 안부 전화나 드리곤 하는데 그래도 쉬지도 못하고 자영업하는 저를 늘 안타까워 하신답니다. 시어머니는 지난 8월에 팔순을 맞으셨습니다. 조촐하게 잔치를 치른 어느 날 저를 부르시더니 100만 원을 주시는 겁니다.

  “어머니 웬돈이세요?”

  "이 돈 적지만 네 대학교 등록금에 보태라!”

  깜짝 놀라서 어머님의 마음만 받겠다고 극구 사양을 했지만 어머님은 확고 하셨습니다. 그 돈을 받고 지난 세월이 서러워서 아니 어머님의 뜻이 고마워서 펑펑 울었습니다. 보통의 어른들이라면 늦게 공부를 하는 며느리에게 뭐하겠다고 공부냐고 하실 텐데 이렇게 마음까지 써주시다니? 다짐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을 타서 맛난 것 사드린다고 그리고 더 열심히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초가집조차 없던 너무나도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상급학교 진학은 엄두조차 못 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언젠가는 꼭 공부하겠다고 다짐하며 살면서도 그때마다 생활이 앞섰습니다.

  그러던 제 나이 55세. 마침 아이 둘도 대학을 마친 그때부터 낮에는 자영업을 하고 밤엔 늦게까지 공부를 해서 몇 개월 만에 중 고등 검정고시를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했고 곧이어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를 늘 응원해주시고 집안의 대소사도 불편하지 않게 도움을 주셔서 고마운데 거기에 등록금까지 마련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드디어 2학기 성적장학금을 받게 되어 제일 먼저 어머님께 전화를 드리고 장학금 일부를 고기와 과일을 사서 어머님이 가시는 경로당에서 대접해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머님을 닮아 가슴 따뜻한 시어머니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지난 어려운 학창시절 시어머니의 장학금지원은 학교를 졸업함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일생 동안 계속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터텔레스’의 말처럼 “공부는 풍요할 때의 장식이요, 역경 때의 피난처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진종순 수필가)

건양대학교 다문화한국어학과 졸업
한국어교원 2급 정교사 자격증 취득
충남 논산에서 한국어 강사로 활동
충남 논산시 논산읍에서 의류자영업 운영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충청지회 운영위원

* 위 겨울눈 사진은 충남 금산 금강권문화예술인협회 김준호 사진작가의 작품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