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만난 사람)대전 김용복 극작가님 사랑하는 배우자님 별세, 아픈맘 달래며 참 아름다운『저 언덕을 넘어서』

김우영 2020-11-10 (화) 00:05 14일전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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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김용복 극작가님과 생전의 오성자 사모님) 

  대전 서구 도심속 아담한 작은산 207m의 도솔산에 늦가을 찬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오던 을씨년스런 2020년 11월 3일(화) 정오 12시 59분. 대전 ‘나진요양병원’에 입원중이던 김용복 극작가님 배우자 오성자 여사님의 별세로 많은 문인들과 지인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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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파(炯波)김용복 극작가님과 배우자 오성자 여사님 영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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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솔산자락 갈마로 122번지 나진요양병원에서 치매로 5년여 고생하시더니 기어히 평생을 다정하게 걸어다니던 동행의 길에 고운 꽃신을 벗어놓으시고 부군의 품안에서 눈을 감으시었다.

  필자는 11월 4일(수)오후에 나진요양병원에 조문에 이어 5일(목) 발인과 대전 서구 계백로 1249번길 174-82번지 정수원 화장장. 이어 서구 상보안 윗길 160번지 안온하게 자리잡은 추모공원 자연장지에 오성자 여사님의 한 줌의 유골을 남향 따뜻한 땅속에 모시고 버스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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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공원을 뒤로하고 나서는 서러운 바지 끝을 가까스로 끌어올리며 장의버스에 올라 나왔다. 우리의 서룸을 아는지 모르는지? 쓸쓸한 찬바람에 길가에 농익은 가을햇살이 쏟아내고 있었다. 들판건너 저 멀리 구봉산 기암괴석에 가을단풍이 마치 병풍에 그려진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만추로 떨어지는 구봉산 낙엽은 속절없이 붉은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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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파(炯波)극작가님과 인연은 십 수 년에 이르고 있다.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와 대전중구문인협회 자문위원을 맡아 크고 작은 행사 때 마다 참석하여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일이 생기면 고맙게도 자문역할을 하여 주셨다.

  뒤에 두고 온 추모공원으로 자꾸만 마음이 되돌아가건만 야속하게 달리는 버스에서 조용히 의자에 기대며 눈을 감았다. 저 지난해 3월의 일이 생각이 났다. 어느 못된 사람이 평소 필자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다가 20여 년 전 황당한 허위사실을 자신의 페이스북과 인터넷 신문에 적시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억울한 사실을 사법당국에 조치를 취하여야 하지만 당시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져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생사(生死)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어 경황이 없었다. 중환자실에서 자녀들과 교대로 보호자실에 눈물을 흘리며 아내를 살리는 일에 몰입하던 때 였다.

  그러다 아내가 생사의 고비를 가까스로 넘기고 퇴원하여 통원치료로 한 시름 놓자 답답한 맘에 형파 극작가님에게 의논드렸더니 다짜고자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명 벗겨줄테니 내일 아침 대전역으로 나와요.”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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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픈 아내는 딸에게 잠시 간병을 맡기고 아침에 대전역으로 갔더니 김용복 극작가 부부가 나와 있었다. 당시 오성자 여사님은 몸이 성치는 않았으나 활동은 어느 정도 가능하였다. 다정한 두 분의 위로와 관심속에 서울에 올라가서 전문 법률 조력가를 만났다.

  그래서 본 사건은 2020년 6월 명예훼손죄로 상대는 세상사의 사필귀정(事必歸正)에 따라서 형사처벌 받았으며, 이로 인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에 따른 민사 손해배상소송도 곧 집행될 예정이다. 이렇다고 필가가 입은 상처에 얼마나 위로가 될까만? 이렇게 처리되도록 조언과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신 분이 바로 김용복 극작가님과 이번에 별세하신 오성자 여사님이다.

  사람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손을 잡아준 사람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아내의 뇌출혈 사고로 생사의 기로에서 경황이 없을 때 김용복·오성자 부부는 따뜻하게 손을 내밀며 필자의 잡아준 고마운 분이었다.

  따라서 이번 김용복 극작가님의 사모님 오성자 여사님 가시는 길에 연속 이틀에 걸쳐 상가와 화장터, 추모공원까지 위로의 동행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고마운 은혜의 조금이라도 보은(報恩)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된다. 참으로 평생을 잊지못할 김용복 극작가님은 인생의 선배이자, 문인(文人)의 선배님이었다.

  대전의 형파(炯波)김용복 극작가님은 원로 언론인기도하다. 비록 체구는 작지만 도량이 큰 전국적인 위대한 인물이었다. 원로에도 중도일보, 세종TV칼럼리스트, 미래세종일보 주필로 매주 고정적인 기고와 우리말 한글을 기고하는 문인이다.

  특히, 대전의 연극 발전을 위하여 1991년 창작희곡 ‘후보를 사랑해요’를 발표하여 법무부와 교육부, 내무부의 후원으로 대전 소년원생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대전 시민회관에서 발표케 하고 1995년에는 ‘환상탈출’을 창작하여 대전 및 충남 일원에서 공연 하였다. 이어 ‘현우 이야기’, ‘낙숫물’ ‘청년들이여 낙망하지 말라’를 ‘효문화뿌리축제’시 수변 무대에서 공연하였다. 세종시 교육청의 후원으로 종촌고등학교 대 강당에서 ‘청년들이여 낙망하지 말라’가 공연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한밭벌 세종대왕으로 불리는 한글 끝판왕 김용복 극작가님은 중부권에서 전통 있고 권위 있는 중도일보에 ‘우리말 우리글’ 매주 연재를 하였다. 필자도 한글을 같이 연구하는 한국어 문학박사로서 지난 2017년 1월 중도일보 우리말연재 200회 기념 축하연을 열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칼럼집『저 언덕을 넘어서』(오늘의 문학사 刊 263p)를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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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복 극작가님이 대한민국 한밭벌 작은 거인이라는 입증은 지난 11월 3일부터 5일까지 3일간 사모님의 장례를 치루면서 현장에서 드러났다. 코로나19의 엄중한 시기에도 불구하고 TV에서나 볼 수 있던 전 국무총리, 전 장관, 국회의원, 각 시·도지사, 시·군·구청장을 시·도·군·구의원과 각종 단체장, 문인, 지인 등 600여 명이 다녀갔다. 또한 조화와 조기도 51개나 접수되어 대전 서구 ‘나진장례식장’ 개장 이후 최고의 내방객과 조화가 들어와 관계자들이 놀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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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글 잘 쓰는 논객을 보통 용사비등 평사낙안(龍蛇飛騰 平沙落雁)이라고 한다. 붓끝의 손놀림이 마치 용이 날고 뱀이 기는 것과 같고 백사장에 기러기 한 때가 가지런히 날아와 앉는다는 뜻이다.
 
  위 말은 대전의 작은 거인 김용복 극작가의 독특한 문장 레토릭(Rhetorice)파토스(Pathos)를 보면서 느끼는 말이다. 정론논객 천의무봉(正論論客 天衣無縫)손 끝에서 버무려지는 필살(必殺)의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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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파 김용복 극작가님은 충남 천안에서 출생하여 1961년 서울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곧장 대전으로 내려와 학교 현장에서 오로지 중․고등학교 국어만을 39년간 가르친 올곧은 국어학 선생이다. 교단을 떠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신문과 방송 등에 우리말 우리글 관련 글을 발표하여 바른 우리말 보급에 앞장 서 오고 있다.

  그리고 김용복 극작가님과 오성자 여사님은 두 손을 꼭 잡고 대전시내를 걷거나 각종 모임에 참석하시는 잉꼬부부로 유명하시다. 그러자 주변에서는 이 분들을 모범으로 삼아 손잡고 부부가 동행하자는 분위기가 일어나기도 했다.

  사모님 오성자 여사님이 돌아가시기 전 근년에 먼 거리 열차를 이용할 때 심한 치매로 인하여 대·소변을 실례(!)하시어 난처한 일을 많이 겪으셨다. 이런 때에도 김용복 극작가님은 원망을 한 마디도 안하시고 주변 승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차분하게 휴지로 정리하고는 사모님을 꼬옥안고 기차에서 내려 주변 사람들의눈시울이 붉어지게 했다.

  따라서 필자의 추천으로 대전광역시 중구청장의 ‘감사장’을 받도록 하는 한편, 필자가 소속한 문학단체에서 ‘동행부부상’을 수상하도록 의논하여 행사장에 부부를 초대하여 꽃다발과 함께 약간의 상금도 마련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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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복 극작가님!

  평생을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오신 배우자 오성자 여사님을 보낸 마음을 달리 무엇으로 위로를 드리겠습니까? 다만, 그간 주변을 보듬으며 넉넉하게  덕망으로 살아오시었으니 그 은혜로『저 언덕을 넘어서』편안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시기 바랍니다.

  주변에는 그간 보듬어온 자녀와 친·인척을 비롯하여 많은 관계 요로의 훌륭하신 분들과 문인, 지인 등과 함께 손을 잡고 더불어 사십이요. 따라서 희망과 행복이 꿀처럼 흐르는 참 아름다운 세상, 살만한 사회가 있는『저 언덕을 넘어서』로 함께 가요. 저 언덕을 넘어 가기 힘드시면 필자가 업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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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5일(목)장지에 사모님을 모시고 온 후 대전 서구 갈마동 아파트 까아만 어둠속에서 홀로 눈물을 흘릴 김용복 극작가님에게 동료교사이자 문인인 임승수 소설가님이 전화를 하신다.

  “여보시게, 김 선생님. 평생 반려자를 먼저 보낸 그 맘을 어찌 소생이 알겠냐만서두. 잠깐 집 앞 식당으로 나오시어 문학박사 김우영 작가님이랑 막걸리 한 잔 하시고 가시게나?”

 “네, 지금 가겠습니다. 임 선생님.”

  갈마동 아파트 앞 ‘시골집식당’에서 임승수 소설가, 임채원 시인, 이새벽 시인, 문학박사 김우영 작가 등이 만나 김용복 극작님에게 화룡점정(畵龍點睛)위로의 막걸리 잔을 권하며 아래처럼 말했다.

  “Life is calling. How far will  I you go?(인생은 부름을 받는 것, 어디까지 함께 가실래요?)”


​  ‘For a better tomorrow for all! (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려면 나눔의 자세로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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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용복 극작가님 중학교 제자 임채원 시인, 문학박사 김우영 작가, 배우자를 잃고 시름에 젖어있는 김용복 극작가, 동료교사이자 문인 임승수 소설가, 이새벽 시인은 사진을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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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문학평론가 김우영 작가
한글세계화운동연합 대전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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