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우 수필] 비밀의 방<공연패/ 약장수> 19

이훈우 2020-10-10 (토) 05:32 13일전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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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우/ 일본동경한국학교교감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일본 본부장

 

어릴 적 우리 집은 머슴이 4명 있는 제법 부농이었습니다. 그래서 큰 집터에 방도 많았고 마당도 넓었습니다. 대문 밖에는 여러 가지 농사도구들을 보관하는 바깥마당, 대문 안에는 집안 행사나 탈곡 등을 할 때 사용하는 안마당 그리고 부엌을 통해서 나갈 수 있어 보관 음식이나 장독 등을 두는 뒷마당 이렇게 마당이 세 개 있었습니다. 머슴 가족들도 우리 집에서 같이 생활했기 때문에 안채, 바깥채, 사랑채 등 작은 집이 여러 개가 있었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우리 집이지만 정확하게 방이 몇 개 있었는지 어릴 때도 몰랐고 지금도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어느 날인가 우리 집에 낯선 사람들 여러 명이 같이 기거하게 되었습니다. 여자 분도 있고 남자 분도 있으며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서 어머니께 여쭈었더니 우리 마을에 들어온 공연패의 사람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마을은 시골이라 1년에 한 두 번씩 가설극장이 들어오기도 하고 때로는 공연패가 들어와서 짧게는 1주일 길게는 한 달 정도 머무르다 가곤 했습니다. 공연패 사람들은 낮에는 주로 집에서 쉬고 밤에는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연극을 보여주거나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일정한 거주지 없이 유목민처럼 전국을 무대로 떠돌아다니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은 공연이 목적이 아니고 중간 중간 쉬는 시간을 이용해 약을 팔거나 쥐가죽이나 토끼가죽 그리고 집에서 쓰고 있는 골동품(호롱, 도자기 등)들을 모으는 것이 주목적입니다. 시골 사람들에게는 연극이 생소했지만 관심을 끄는 선전과 구수한 멘트로 시골 어른들의 정신을 쏙 빼 놓기 때문에 저녁이면 공연장으로 모여듭니다. ‘아이들은 가라! 아이들은 가라!’라는 말로 아이들은 입장을 시키지 않습니다. 시골 어른들을 대상으로 약을 팔거나 돈이 되는 뭔가를 거두는 일에 아이들은 방해만 되기 때문입니다.

 

공연의 주제는 주로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별이나 권선징악 또는 출생의 비밀 등이었습니다. 중간 중간 멋진 가락의 노래 소리가 천막 밖으로 흘러나오기도 합니다. 한껏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이면 바람잡이가 나와서 시골 어른들의 아픈 곳을 귀신처럼 찾아내어 긁어주는 멘트와 함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약을 권하거나 집에 있는 오래된 물건들을 가져오면 돈을 주겠다는 선전을 합니다. 시골 어른들은 거짓인 줄 의심하면서도 귀가 솔깃해져 약을 삽니다. 나중에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샀던 약을 먹고 건강이 좋아지거나 아픈 곳이 나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다음 해에 또 공연패가 나타나면 작년 일은 까맣게 잊고 다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합니다. 참으로 순수한 시골 어른들이셨습니다.

 

당시 시골에서는 돈이 많이 유통되지 않았습니다. 한 달에 20원씩 학교에 육성회비를 낸다거나 5일마다 열리는 장에 가서 필요한 공산품을 살 때 외에는 돈이 거의 필요가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필요할 때면 곡식으로도 물건을 바꿀 수도 있는 시절이었습니다. 공연패들도 입장료를 돈으로 받기도 했지만 돈이 없으면 잘 말린 쥐의 가죽을 돈 대신 받거나(당시에 쥐의 가죽은 고급 옷감 재료나 가방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어 비싸게 팔렸음) 골동품 또는 쌀을 받기도 했습니다.

 

공연패들이 1주일 쯤 활동하고 나면 주변의 제법 먼 동네까지도 소문이 나서 요즈음의 아이돌처럼 인기인이 됩니다. 낮에는 공연패 사람들을 보려고 우리 집 근처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기웃거리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나는 괜히 어깨가 으쓱 해 집니다. 그들과 아무 상관은 없었지만 가까이서 이야기도 마음대로 하고 때로는 작은 선물도 받아서 자랑도 할 수 있었으니까요. 공연패 속에는 우리 또래의 아이들도 있었는데 학교는 다니지 않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학교를 안 가는 것이 너무 부러웠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전국을 무대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살림살이도 모두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짐들이 많았습니다. 내가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 행복한 삶은 아니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지만 당시 어린 마음에는 너무 좋아 보이고 진심으로 부러워보였었습니다. 가고 싶을 때 떠날 수 있고, 가고 싶은 곳 생기면 언제든 갈 수 있으며 신기한 물건들을 많이 가질 수 있는 그들의 생활이 한 없이 부럽기만 했었습니다. 나도 부모님께 부탁하여 공연패에 들어가 볼까?

 

지금도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짙은 화장을 하고 상대의 눈을 빤히 쳐다보면서 감정 표현을 감동적으로 하던 그 때의 공연패 사람들이 생각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