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덕 수필] 아버지의 유산

관리자 2020-09-15 (화) 09:13 15일전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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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 환경연구소 대표, 재작년 5월 24일 대한민국을 빛낸 환경부문 환경육성공로대상을 민주신문에서 수상했다.

내 고향은 충청도이다. 논산군 성동면 월성리2구 13번지에서 2남 2녀 중에서 세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나의 유년시절은 가난했지만 부모님 밑에서 그나마 행복했다.

그때 우리 아버지는 부지런했다. 새벽이 깨기 전에 동네 어귀부터 청소를 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남의 집 대문 앞까지 구석구석 청소하고, 논두렁 풀까지 깎았다.

“아버지, 왜 남의 논두렁 풀을 깎아요?”
내가 물으면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목이다. 아침이슬에 바짓가랑이가 젖는단다.”
대답하고는
“아들아, 누가 보든 안 보든 상관없이 남을 배려해야 한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하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 날, 학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초등학생이 다리를 건너다가,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였다. 다른 사람들은 발을 동동거리기만 하고 있는데, 우리 아버지는 흙탕물 속에 뛰어 들어가, 목숨 걸고 아이를 구한 일도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남을 베려하는 타고난 착한 마음이 몸에 배어있었다. 반장도 아니면서, 이장도 아니면서, 쓰레기 청소, 노인 보살피는 일, 혼인잔치가 있을 때 소 잡고 돼지 잡는 허드렛일까지, 궂은일은 도맡아했다.

아버지는 마음이 아플 때 노래를 불렀다. 내가 초등학교 문턱도 못 밟고 부러운 눈으로 학교 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또한 친구들이 제기차기를 하고, 구슬치기를 하고, 땅따먹기를 할 때, 함께 놀지 못하고, 아버지를 따라 산으로 올라가서 나무를 할 때였다.

“엄니 제가 앞에서 끌게 뒤에서 미세요/ 한밭 고갯길 쉬엄쉬엄 따라 오세요/ 가다가 지치시면 손만 얹고 오세요/ 발소리만 내시고 그냥저냥 따라오세요/ 엄니만 계시면 힘이 절로 나요/이 나무 팔고 갈 때는 콧노래도 부를께요//라는 노래를 불렀다.

“땅이 아파 용트림 쳐서/ 하늘로 치솟는 소나무야/ 푸르른 정기 감도는/ 그 붉은 몸매 위에/ 구름이 모여 비 온다/ 고달프니 쉬어가자// 라는 노래도 불렀다.

아버지가 부르셨던 그 노래들이, 우리민족의 정서와 혼이 담긴 노래라는 것을, 삶의 희로애락을 가슴으로 담아 노래하는, 전통 소리문화의 꽃인 시조창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아버지가 귀에 쟁쟁하게 못 박아준 말이, 예수가 제자들에게 산상수훈에서 가르쳐준 것이라는 것도, 오랜 세월이 흘러가서, 귀가 열린 후에야 알았다.

그랬다. 우리 아버지는 내 나이 열세 살 때, 우리 어머니는 내 나이 열다섯 살 때 돌아가셨다. 어린나이에 부모를 잃어버린 나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다만 아버지가 물려주신, 시조창을 마음이 외로울 때 부르면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아버지의 유산을 생각하면서, 공자를 공부했다.

공자는 일찍이 논어 위정편에서 쉰 살에 천명을 알았다고 했다. 예순 살에 귀가 순해졌다고 했다. 일흔 살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랐지만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10년 앞선 환갑 때부터,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내 인생을 결정했다.

예순 살 그때부터, 서울 신림동 도림천에서 밤낮을 엎드려 보내고 있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유산을 실천하기 위해, 아버지가 부른 노래를 부르면서, 이십여년 청소하고 봉사하고 있다. 사시사철 도림천 문화를 꽃피우고 있다.

씨를 뿌리고 꽃을 가꾸면서, 개똥을 치우면서, 일생을 바치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또라이라고 하고, 나를 거지라고 한다. 또한 반말을 듣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그 와중에도 어떤 날은 옷을 깨끗하게 입고 나가서, 내가 만든 쉼터에서 휴식을 즐기고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틈틈이 술과 안주 그리고 과일도 권해드린다.

아이와 손잡고, 젊은 청춘들이 손을 잡고, 자전거타고, 휠체어를 타고, 지팡이도 짚고 다니는 도림천은 부부산책길, 애인산책길 노인산책길 등이 되어있다. 내가 처음 소매를 걷어붙인 이십여년 전과 비교하면, 무릉도원이 되었다. 줄줄이 심어놓은 수양버들이 나를 향해서 춤을 추고 있으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잘했다고 칭찬해 주는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