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우 수필] 비밀의 방, 장날3 ⑭

이훈우 2020-08-21 (금) 07:19 3년전 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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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훈우/ 동경한국학교 교감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일본본부장

 

저는 가끔 꿈을 꿉니다. 어떤 때는 아침에 일어나도 기억이 생생하고 어떤 때는 희미합니다. 그런데 기억이 잘 나는 꿈은 그날 일상 중에 똑같이 재현이 됩니다. 무서울 정도로 꿈의 장면과 똑 같습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꿈은 언젠가 사건이 일어난 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얼마 전에 꿈에서 보았던 장면인 것을 알고 깜짝 놀랍니다. 그리고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는, 다음 날의 결과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잠이 들면 그 결과에 대해 꿈에서 암시를 해 줍니다.

 

지금까지 남들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습니다. 꿈속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상당히 선명하게 궁금증을 풀어주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든 요즘은 여간해서 간절히 기도를 해도 꿈에서 암시를 해 주지 않습니다. 다만, 아주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는 기억도 못하게 희미하게 암시를 주곤 하지만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제가 잘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일이 일어나고서야 ! 내가 꾼 꿈의 모습이네!’하고 깨닫곤 합니다. ‘집중력이 떨어진 걸까?’라는 생각을 한 번씩 해 봅니다만 암튼 지금까지 남들에게 말하지 않았던 나만의 특별한 비밀입니다.

어릴 때 저는 엉뚱한 생각으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실없는 놈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곤 했었습니다. 예를 들어 너는 꿈이 뭐니?’라고 물으면 ,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 꿈이야.’라고 말하곤 했었습니다. 당연히 미친 녀석이라고 무시당하기 일쑤였지만 저는 지금도 그 꿈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진심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실력을 쌓고 싶었습니다. 무협영화나 소설 속에서 열심히 무공을 익히면 축지법도 쓸 수 있고 하늘도 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어릴 적부터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무술을 익히고 싶었고, 열심히 노력을 했었습니다. 몸을 단련하여 나중에는 하늘을 날고 싶었습니다. 철이 든 지금은 태극소년단처럼 공중 2, 3회 전을 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데 그게 어디 쉽습니까?

 

어릴 적 부모님도 저의 하늘을 나는 꿈에 대해 들으시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집에 가다가 오래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를 만났다고 하면 하면 믿으실까요? 저는 그냥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보면서 아무 말 없이 엄마 뒤를 따라 집으로 향해 걸었습니다.

 

집에 도착하여 망태기를 등에 메고 누렁이를 앞세워 소꼴을 베러 갔습니다. 초여름인데도 아직은 해가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좋아할 풀이 많은 곳에 누렁이를 풀어놓고, 나는 후딱 꼴 한 망태기를 채웠습니다. 망태기 입구 위로 풀들을 가능하면 높게 솟아나게 해서 그 중앙에 멋있게 낫을 돌려 꽂으면 일이 끝나는 것입니다. 아직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덜 되어 뉘엿뉘엿 기울어지고 있는 석양을 감상하다보니 스스로 잠이 들었습니다.

 

얘야, 집에 가야지?’

할머니가 나에게 말했습니다. 누렁이가 저 멀리 먼저 집을 향해 가고 있다고.

참말이가, 할메? 어데, 어데?’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보니 진짜로 우리 누렁이가 저 멀리 혼자서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할메 빨리 가자!’

하고 할머니를 찾으니 어디에도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혼자서 고개만 갸웃하며 소풀 대래끼(소꼴 망태기)’를 등에 메고 누렁이를 따라 내달렸습니다.

누렁아! 같이 가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