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우 수필] 비밀의 방, 장날 ⑫

이훈우 2020-07-20 (월) 08:08 3년전 633  

b8d1fb7643acfb4e13b38c4635f42e71_1595200126_927.jpg

이훈우/ 동경한국학교 교감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일본본부장

 

훈우야, 엄마 장에 갔다 올테니 집 잘 보고 있거래이!”

나도 가고 싶은데?”

오늘은 626일로 끝자리가 16인 날에 열리는 우리 동네에서 가까운 읍내 장날입니다. 이웃된 읍내 5군데를 묶어서 5일마다 이동하면서 장을 열고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이 만들어 문화로 매일 장을 열면 매출이 오르지 않기 때문에 5일마다 돌아와서 물건을 파는 것입니다. 마침 오늘은 일요일이라 나도 장에 따라 가고 싶은 생각에 엄마를 조릅니다.

장에 가 본 지가 1년도 넘었어요. 나도 가고 싶어요.”

소 풀도 해야 하고, 염소도 돌봐야지! 집에 아무도 없는데.”

갔다 와서 하면 되지. 어제도 많이 해 놨어요.”

모두 집 비우면 아버지께 혼 날 텐데?”

그래도, 내가 빨리 돌아올게.”

결국 엄마는 나를 이기지 못하고 동생까지 데리고 장 구경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장이 열리는 읍내까지는 5킬로미터쯤 됩니다. 동생 걸음으로 두 시간 정도 걸립니다. 나와 동생은 신이 나서 엄마 뒤를 따라 나섰습니다. 동네 어귀를 도니까 이른 아침인데도 벌써 이 곳 저곳에서 모심기를 하는 모습들이 보였습니다. 일찍 심은 논에서는 벌써 벼가 제법 자라있었고, 그 사이를 개구리들이 아침부터 배가 고픈지 벌레를 잡으려고 이러 저리 점프를 하며 애쓰고 있었습니다. 논두렁을 지나 이웃 동네 중심가를 지날 때는 엄마와 같이 있는데도 괜히 겁이 났습니다. 동네 아이들 몇 명만 모이면 이유 없이 시비를 걸어 수시로 서로 싸우던 아이들이 사는 옆 동네였기 때문입니다.

 

옆 동네를 무사히 지나 오솔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벌써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습니다. 잠시 나무 그늘에 앉아 엄마가 주시는 시원한 미숫가루 물 한 잔을 마실 때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그 행복을 조금이라도 지속하려고 하늘을 이불 삼아 풀 위에 잠시 누우면 크고 작은 들풀들의 향기와 땅은 물론이고 작은 돌과 바위의 냄새까지 내 코를 자극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 숨어있는 작은 곤충과 벌레들의 작은 움직임까지 내 신경 세포에 잡힙니다. 좀 더 신경을 곤두세우면 멀리서 날아오는 아카시아 향기, 밤꽃 향기, 크고 작은 꽃들의 향기들까지 내 코를 간지럽힙니다.

 

나는 그 중에서도 유난히 소나무 향을 좋아합니다. 이른 봄이면 소나무 새순을 꺾어 겉껍질을 벗겨내고 속껍질(우리 동네는 송구라고 했음)을 벗겨 먹기도 하고, 개화 전의 송화를 꺾어서 먹기도 했습니다. 적당히 먹어야지 배가 고프다고 너무 많이 먹으면 변비가 생겨 나중에 혼이 납니다. 우리 옛말에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왜 가난하면 똥구멍이 찢어질까요? 그건 바로 새순이 날 무렵이 보릿고개 시기인데 가난한 사람들이 배가 너무 고파 나무껍질, 풀 등을 지나치게 많이 먹게 되어 변비가 되고, 변비가 되면 예전에는 병원이 여의치 않아 숟가락으로 파내는 일까지 벌어지는 심각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너무 가난하면 똥구멍이 찢어지는 것입니다.

 

잠시 꿈같은 휴식을 뒤로 하고 우리는 또 걸었습니다. 오솔길을 벗어나 신작로로 접어들었습니다. 엄청난 먼지를 동반하며 한 번씩 지나가는 트럭은 엔진만 철로 만들어져있고 눈에 보이는 것은 대부분 나무입니다. 속도가 너무 느려 한 참을 동생과 나는 차 뒤를 따라갑니다. 엔진에서 나오는 매연 냄새가 그렇게 고소하게 느껴질 수가 없습니다. 배 안에 기생충이 있으면 생기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먼지투성이가 되고서야 차를 저 멀리 보내줍니다. 당시의 자동차는 겨울이 되면 엔진이 잘 걸리지 않아 엔진코를 잡고 조수가 밖에서 한참을 돌리기도 하고, 뜨거운 물을 부어 엔진을 녹이기도 하면서 시동을 겁니다. 당시에는 운전사가 상당히 대접을 받던 시절이고 모든 차에는 반드시 조수가 동승을 합니다. 조수는 나중에 운전사가 되기 위한 연습생이기도 했습니다.

 

양쪽으로 높게 자란 미루나무 가로수길 신작로를 걷다보니 내리 쬐는 햇볕에 동생은 금방 체력이 소진된 것 같습니다. 점점 엄마 치맛자락에 매달리며 칭얼대기 시작합니다. 할 수 없이 형인 제가 동생을 들쳐 업었습니다. 잠시 걷다보니 동생도 나도 지쳤습니다. 할 수없이 길가 논두렁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습니다.

 

논두렁에는 콩이 떡잎을 내밀고 새싹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농사지을 땅이 귀했던 그 시절에는 논두렁에도 콩을 심어서 가꾸었습니다. 나중에 콩서리의 표적이 되기도 하겠지만 한 뼘의 땅이라도 모두 이용하려고 애쓰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밖에도 논에는 벼와 함께 미꾸라지를 키우거나 우렁이(꼴부리)를 방생하기도 하였습니다. 논두렁에 앉아있다 보면 멀리서 바람에 실려 오는 아카시아 꽃향기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네 산을 망치려고 일제강점기에 산마다 아카시아 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아카시아가 보물이 되었습니다. 아카시아 나무는 단단하여 최고급 세공용 목재로 활용되고 아카시아 꽃 꿀은 그 맛과 향이 좋아 양봉가들이 선호하고, 아카시아 꽃 향(자스민 향)은 청량 음료수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소나무 향기와 함께 아카시아 꽃향기는 제가 좋아하는 향기 중의 하나입니다. 바람에 실려 오는 아카시아 꽃향기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동생을 달래어 장터를 향해 다시 지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이제 개울 하나를 더 건너고 고개 하나를 넘으면 읍내 장이 나옵니다. 며칠 전에 비가 많이 온 관계로 개울물이 제법 깊어져 있었습니다. 동생을 업어서 건넜습니다. 개울을 건너고 나니 뽕나무 밭이 있었는데 오디가 너무 맛있게 달려있었습니다. 동생과 나는 배도 고팠던 터라 정신없이 오디를 따 먹었습니다. 입가가 빨갛게 되었습니다.

 

서로 보고 웃으며 저 멀리 앞서 가시는 엄마를 부르며 같이 가자고 소리쳤습니다.

엄마! 같이 가요. 아직 멀었어요?”

들은 체도 안 하시고 저 멀리 앞서 가시는 어머니 머리 건너 읍내 장터가 보입니다.

 

(장날-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