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금산과 문학적인 인연, 그리고 금산 출신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 대전동구문화원 길공섭 원장님을 만나

김우영 2020-06-21 (일) 23:37 3년전 1541  

 충남 금산과 문학적인 인연, 그리고 금산 출신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 대전동구문화원 길공섭 원장님을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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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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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과 대전의 문화자산​

대전동구문화원 길공섭 원장

 

□ 앞세우는 시

b0eee0bb46ee801f5e625c98c12ea6ae_1592751519_4344.jpg금산 황한섭 시인과

대전동구문화원 길공섭 원장

우린 그냥 오랜 객지 벗이다
퇴근길에 걸치는 소주 한 잔에

말벗이나 하다

석쇠에 돼지고기가 새까맣게 다 타 버리도록
주절거리는

여보게
오래 전 말죽거리에서 호박 농사만 짓던 선친
원망일랑 이제 그만 하시게나

작년 여름 장마에 떠내려간 것들이 어디 한 두 가지더냐

토실한 밤 한 톨 까서 입에 넣어주던 어머니
찬 겨울에도 우물에서 식구들 빨래하다

손에 동상이 걸려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지
객지로 식모살이 떠난 어린 딸년 생각에

이 눔아, 아직도 술이 네놈 입에 잘도 넘어 가드냐
간밤 포장마차 여주인의 웃음소리만 흐드러진다
    - 황한섭 시 ‘퇴근길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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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황한섭 시인과

문학박사 김우영 작가

  1. 충남 금산과 문학적인 속살깊은

 20여년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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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르런 초목주단을 깔아놓은듯한 초여름 길목의 계절 6월 20일 주말 오후. 온통 산하가 눈부시게 푸른날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고장. 비단골 충남 금산 추부에서 ‘황금오리알’이라는 요식업을 운영하는 황한섭 문우(文友)의 제3시집『황금오리알 트롯』출판기념회에 초대를 받았다.
 
  대전 중구 부사동에서 박관식 시인과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대전중부권 송일석 지회장님의 승용차를 타고 금산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찬란함 그 자체였다. 앞으로 길게 난 길가 양쪽 산에는 연두색 잉크를 뿌려놓은 듯 널브러져있고, 아래는 졸 졸 졸---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바로 손바닥으로 담아 입 안에 우려넣어도 될만큼 맑은 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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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2b09f0786d50d09b383b8d998a166c_1592790079_0119.gif 금산 인삼경작지와 푸르런 산하 모습

  금산을 가면서 지난시절이 생각이 났다. 2001년 9월 인사발령에 따라 서천에서 금산교육청 복수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면서 금산과의 지연(地緣)과 혈연(血緣)이 시작되었다. 물론 그 이전부터 금산문화원의 안용산 시인을 비롯하여 장석열 시인 등과 문학적인 교류를 하고 있었다.

  복수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제일 먼저 인사를 드린 분은 금산읍 소재 삼남제약주식회사 김순기 회장님이었다. 김 회장님은 같은 집안 어른이시면서 지난 1983년 7월 9일 만60세 환갑잔치를 마치고 돌아가신 1923년생 아버님과 연세와 모습이 비슷하시어 사무실과 자택으로 자주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다.

   어르신은 찾아뵈면 늘 책을 보시고 글을 쓰시는데 이미 몇 권의 저서를 출간하신 작가이셨다. 저서를 살펴보면 제원면 봉황천 건너 고향산 소재의『소사봉 아래 작은 숨소리/ 1992.4.30/예인들 출판사』를 비롯하여 문화유산으로서의 인삼의 역사적 고찰의『금산곡삼/1998.10.25/양서각 출판사』, 20대 젊은 나이에 일본 동경유학중 겪은 일과 삼남제약 탄생기와 사모님 고양현(高良鉉)님과 연문편지 소재의『동경일기와 그 후 65년/ 2006.5.23/분지 출판사』, 1945년 제원에서 유행하던 장티푸스로 49세에 일찍 작고하신 선친을 그리는 사부곡(思夫曲)『김은석 履行明鑑/2007.5.23/ 분지출판사』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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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봉 아래 작은 숨소리/ 1992.4.30/예인들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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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곡삼/1998.10.25/양서각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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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일기와 그 후 65년/ 2006.5.23/분지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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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석 履行明鑑/2007.5.23/ 분지출판사』


   같은 집안 후학이 금산 복수 초등학교에 근무하며 글을 쓰는 작가라며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다.

 

  "다른 책을 많이 보며 연구하는 자세로 열심히 글을 쓰면 훗날 좋은 작가가 될 것이니 노력을 많이 하세요?"

  "네, 어르신(아버님) 명심하고 잘 살아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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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김순기 집안 어르신은  

늘 책 보기와 글쓰기를 연구하는 시대의 선각가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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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제원가는 길목에 자리했던 문학비(지금은 鄕山 所思夆으로 이전) ​

  2001년 당시 일찍이 작가의 길을 걸어가시는 집안 어르신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며 붓을 갈고 문장을 조탁(彫琢)하여 문학박사가 되고 작가로 걸어가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주변 금산지역의 집안 일가분들과 따뜻한 교류가 시작되었으며 이 무렵 만난 분이 김 회장님의 아드님 김호택 연세소아과 원장님이다.​ 김 원장님 또한 필자(筆者)와 나이가 같고, 글을 쓰는 수필가였다. 늘 잠바차림의 소탈한 분이라서 종 종 막걸리식당을 찾아 금산문화이야기, 집안 이야기, 문학 이야기를 나누며 살갑게 지냈다.

  그 후 금산 추부에 있는 중부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마치었다. 박사학위를 받는 날 김호택 원장님은 추부면 황한섭 시인이 운영하는 황금오리알식당에서 오찬을 준비하고 축하해주었다. 같은 집안이기도 하지만 김 원장님 사모님이 중부대학교 교무처장님과 영문학과 교수님으로 재직하고 있는 인연이 있었다. 또한 필자의 둘째 사위가 금산읍에 있는 직장으로 출퇴근하고 있다, 이래 저래 금산은 20여년 지연, 혈연이 닿아 고향 같은 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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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택 원장님 마련 김우영 문학박사 학위 축하오찬(황금오리알 가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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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문화원장을 역임한 김호택 수필가와 선술집에서의 소소한 만남의 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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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문화원 안용산 시인의 사회로 김호택 수필가의 저서『생명, 그 황홀한 떨림』출판기념회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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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月 김호택 수필가의 저서『생명, 그 황홀한 떨림/2009.6.30/ 북커뮤니케이션즈 출판사』

2004년 한국영농신문사 주관 공모 제1회 한국농촌문학상 수상, 2008년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공모 제1회 해외문학상 수상으로 한국문단 등단 수필가로 활동

  충남 금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아름다운 자연정취와 문학을 생각하면서 지난 17세기 독일의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시인의 말이 떠 오른다.

  “예술은 제2의 자연이다. 예술도 신비적이긴 하지만, 그러나 자연이 더 해석하기 쉽다. 왜냐하면 예술은 지성을 통해서 태어나는 것이므로. 완성된 훌륭한 예술품은 인간의 영혼이 낳은 것이다. 모든 예술에 있어서 자연은 마르지 않는 샘이다.”

  지난 20여년 전 일을 생각하며 금산을 가다보니 송일석 지회장님 승용차가 추부면에 소재한 황금오리알 가든에 가볍게 도착한다. 가든 광장에 천막을 치며 시화(詩畵)전시 등 출판기념회 행사를 준비하던 황한섭 시인이 반갑게 맞이한다.

b0eee0bb46ee801f5e625c98c12ea6ae_1592750467_3853.jpg금산 황한섭 시인 출판기념회 마치고

  “어서오세요. 문학박사 김우영 작가님 일행을 환영합니다.”
  “오늘 제3시집『황금오리알 트롯』출판기념회를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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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후배 황한섭 시인 출판기념회

대전동구문화원 길공섭 원장 

 

   2. 충남과 대전의 큰 문화자산 대전동구문화원 길공섭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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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한섭 문우와 인사를 나누고 행사장을 들러보는 사이에 반가운 분이 행사장에 도착한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대전동구문화원 길공섭 원장님을 여기서 뵙네요. 반갑습니다. 어쩐지 오늘 귀인을 만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허허-- 김 박사님 이곳 금산은 제가 태어난 고향이라서 웬만한 행사는 빠지지 않고 찾아옵니다. 아름다운 금수강산 금산을 찾아주시어 고맙습니다.”

  “아. 그러세요? 원장님 저도 이곳 금산이 고향 같은 곳이예요! 20여 년 전부터 지연과 혈연을 갖고 있어요.”

  “아하. 그렇군요. 그럼 같은 동향이네요. 허허허--- 더 반갑습니다. 김 박사님!”

  대전동구문화원 길공섭 원장님은 평소 필자가 존경하는 문화인이다. 길 원장님은 금산 부리면 출생으로서 시인이며, 수필가이고, 사진작가이며, 문화행정가이다. 금산 출신으로는 대표적인 문화예술 출향인이며, 대전광역시에서도 뛰어난 충남 대전의 큰 문화자산으로 평가되고 있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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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에 관하여는 긴 세월만큼 피사체를 담아내는 감정은 농익은 프로페셔날(Professional)이다. 그간 고향 금산사진작가협회를 창립한 후 초대회장에 이어, 한국사진작가협회 이사, 대학로컨텐츠협의회 회장, 대전광역시 사진써클총연합회 회장을 하는 등 오랜기간 사진작가의 길을 걸어온 내공일 것이다. 사화집으로는 포토에세이『하얀 도화지 위의 풍경』과『길공섭의 앵글 속으로』가 있다.

  대전동구문화원 길공섭 원장님은 일찍이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젊은시절부터 인문학도 길을 걸어오면서 2008년 문학사랑 신인문학상을 받아 한국문단에 등단하였다. 현재는 동구문학회와 뜨락문학회 고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3. 대전문화행정가로 선이 굵은 호방한 호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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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작가와 시인, 수필가로 활동하던 길 원장님은 뜻한바 있어 지난 2009년부터 제4대에서 부터 현재 제6대째 문화원장을 이어가고 있다. 2021년 12월까지 동구문화를 활짝 열어갈 길 원장님은 “동구의 풍부한 전통문화 자원을 살린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해 지역 주민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한 대전광역시 5개구의 문화원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 시민의 문화적 욕구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집합체 역할을 하는 대전문화원연합회가 있다. 길 원장님은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지난 2012년 제9대 대전연합회장을 맡은데 이어 2017년 12월 20일 대전문화원연합회장을 연임했다.

b0eee0bb46ee801f5e625c98c12ea6ae_1592751226_5708.jpg대전동구문화원 가오동 이전 신축에

노력한 황인호 동구청장과 길공섭 원장 

  현재 대전 동구문화원은 10여 년 자양동 시대를 마무리하고 지난 5월 28일 새로운 ‘가오동 시대’를 열었다. 동구의 신도시 중심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가오동으로 이전한 동구문화원은 자양동 원사보다 2.5배, 대지면적은 4.5배 넓어졌다. 기존의 문화강좌실과 함께 전시관, 음악홀 등을 갖춰 구민들을 위한 혜택이 더 늘어나게 되었다. 

  대전동구문화원 길공섭 원정장님이 대전 동구청 황인호 청장님을 만날 때 마다 몇 년간 얼마나 졸랐는지 황 청장님은 가오동 이전에 즈음하여 이렇게 말한다.

  “저는 ‘가오동 문화원타령’ 노래가 별도로 있는 줄 알았어요? 허허허--- 이제 그 타령 안들어 마음이 편하네요. 동구문화원 가오동 이전 신축을 축하드리며 문화강국 ‘동구 가오동시대’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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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동구문화원 가오동 원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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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동구문화원 가오동 이전행사에서

인사말을 하는 길공섭 원장

  길공섭 원장님은 가오동으로 동구문화원을 옮기고 이렇게 말했다.

   “대전에서 문화청장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 동구 황인호 청장님 가오동 이전 신축에 도와주시어 고맙습니다. 가오동은 동구의 신도시 중심지로서 문화수요가 다양하고 많은 곳입니다. 우리 동구는 다문화가족 국가가 30여개 국이 있어요. 다문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어요.” 라고 말하며 이어 “가오동은 교통편이 좋아 주민의 접근성이 좋은 지역이라서 문화원 뒷편으로 넓은 숲이 있는데 숲속 음악회, 시낭송 등 작은 음악회, 공연으로 문화향유를 위하여 개발할 예정입니다."​

  언제나 호방하게 웃으며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호방한 희극적인 삶을 영위하는 길공섭 원장님을 보면서 지난 17세기 프랑스 모랄리스트 ‘장 드 라브뤼에르’의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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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

가슴 따스한 휴머니스트 길공섭 작가

 

  “인생이란 느끼는 자에겐 비극, 생각하는 자에겐 희극이다.”

  ‘유능한 사람은 배우기에 힘쓰는 사람’이라고 한다. 시와 수필, 사진 등 문화예술활동과 문화컨텐츠개발, 문화연구 프로젝트에 힘 쓰는 길공섭 원장님의 남다른 투혼의지에 후학으로서 존경심이 우러난다.

  지역사회에서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Romantist)요, 가슴 따스한 휴머니스트(Humanist)’로 불리는 대전동구문화원 길공섭 원장님. 바람처럼 스치는 작은 인연도 호주머니에 넣었다 챙기는 길공섭 원장님을 보면서 지난 19세기 맑고 서정적인 수필의 금자탑을 세운 금아(琴兒) 피천득 작가는 인연에 대한 어록이 생각이 난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 길공섭 작가의 수필작품 감상

     하늘동네에는 초록별이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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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공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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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전망대에서 바라본 대전역과 동구전경

   오랜 세월 잘 숙성돼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 좁은 골목길에 하하 호호 웃음이 넘치며 된장찌개 구수한 내움이 담 넘어 풀풀해도 행복 바이러스가 넘치는 달동네, 그곳의 속살을 들여다보며 진한 향을 음미해 보고자 한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는 어떻게 살았을까? 지게와 낫 그리고 고무신이 전부였던 빈곤의 나라. 국민소득 60달러, 그 고난의 시대에 우리의 삶은 어떠했을까? 아, 그 땐 그랬었지. 반세기 전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추억’은 그리 많지 않다. ‘역사와 추억을 함께 만날 수 있는 곳’ 대동산1번지 달동네가 그 추억의 여운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으며 고소한 이야기가 진동하는 곳이다. 

  우리의 달동네가 현재에 이르게 된 시대적 배경은 근대사와 맥을 같이한다. 빈민층의 주거지역으로 달동네가 태생되게 된 이면에는 1960년대 이후 기간산업이 발달하면서 공업화가 이루어지고 수출이 증가 되면서 대규모의 이농(離農)현상도 달동네를 형성하는데 큰 목을 했다.

  그리고 달동네에 처음 둥지를 튼 사람들은 민족상잔의 가슴 아픈 6.25 동란으로 남북이 분단되면서 월남한 피난민들이 거주지를 도시의 산비탈 등 음지에 판잣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달동네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방에 누어있으면 수많은 은하수 우수수 떨어져서 작은 마당 텃밭에 한줌 사랑을 뿌리는 달동네, 휘영청 밝은 달을 따다 장대에 가로등 만들어 걸고 반짝 반짝 빛나는 별을 따다 황토벽 벽지 바르고 부엉이 부엉부엉 울어대면 호롱불 밝히고 화롯불에 고구마 구어 먹으며 달달한 이야기꽃이 피어나던 곳, 정겨움이 찢긴 창호지 문틈으로 삐죽이 고개 내미는 고소한 곳 이곳이 달동네의 정서다. 

  대전 동구 자양초등학교 건너편 골목으로 들어서면서 산동네의 내움이 진동을 하며 길손을 마중한다. 달동네 골목길은 복지관 길을 뼈대삼아 사다리 모양으로 이리저리 얽혀 있으며 골목 대부분은 어른 한사람이 지나가기 버거울 정도로 좁은데다 가파르기까지 하다.  

  골목길을 오르다보면 건강한 젊은이들도 쉬어가며 올라가야 할 정도며 계단에 앉아 숨을 고르는 노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방 한 칸에 부엌 한 칸인 집들이 대부분이며 그나마 이것저것 고쳐 살면서 지금처럼 됐다고 한다. 노인들의 말에 의하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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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가 언제 헐리려나? 조마조마하던 때가 있었어요. 가진 돈 한 푼 없고 빽도 능력도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나가라면 나가야지 무순 방법이 있나, 길거리에 나앉는 수 밖에, 그래도 지금은 우릴 쫓아내지 않는다고 하니 다행이여 다행!”  

   달동네 오름길을 걷다보면 골목 전체가 노란색으로 칠해진 곳, 벽에는 파스텔톤의 꽃 그림이 수놓아져 있다. 그리고 창문 너머로 귀여운 얼굴을 내놓고 있는 아이 그림, 골목 양쪽 벽에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사이좋게 노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달동네 골목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인 것 같다. 

  달동네 골목 골목길을 걷다보면 각종 해학적 벽화와 조형물을 감상하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낮은 스레이트 지붕위에 빨간고추, 백발의 할머니는 햇볕 잘 드는 공터에 앉아 해 바라기를 한창하고, 길섶에는 분홍색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달동네. 이 모든 것들이 골목길의 낡은 풍경과 잘 어울려서 묘한 감흥을 자아내게 하는 곳이 대동 산1번지 달동네다.  

  달동네는 지금 변신중이다. 동구청에서 추진하는 관광동구를 위한 달동네 하늘공원이 재정비되고 연애바위 길도 추억의 길로 멋지게 단장할 것이며, 달동네에 공원사업을 추진해 통영 동피랑보다 더 유명한 달동네가 될 것이다. 달동네는 역사와 추억을 오롯이 간직한 소중한 우리의 자연유산이다. 불도저나 굴삭기의 소음은 영원이 들리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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