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우 수필] 비밀의 방, 오침⑥

이훈우 2020-05-10 (일) 04:55 3년전 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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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훈우/ 일본동경한국학교 교감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일본본부장

 

어린 시절 내 고향 여름 오후는 온 동네가 쥐죽은 듯 정막에 쌓입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오침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축들까지도 낮잠에 빠져듭니다. 어쩌면 즐긴다기보다 더위에 지쳐 쓰러진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더워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늘을 찾아 늘어져 잠을 청하는 것입니다. 땅속에서 애벌레로 5, 7, 13, 17년을 살다가 세상에 처음 얼굴을 내민 매미들만이 짧은 생을 아쉬워하기라도 하듯 악을 쓰며 짝을 찾고 있을 뿐 동네는 정막만 흐릅니다.

 

이렇게 모두가 잠든 시간이면 온 세상은 나의 것이고 나의 시간이었습니다. 모두가 나의 친구이었고, 보이는 것은 모두 내 놀이터요 놀잇감이었습니다. 이웃집 담장 위 호박에 말뚝 박기, 개미 잡아 싸움 붙이기, 풍뎅이 잡아 오래 돌리기, 왕잠자리 잡아 시집보내기. 그러다 혼자 놀기가 심심해지면 나는 동네 앞 위수강 건너 삼각주에 가서 조개나 물고기를 잡습니다. 우리 동네는 지류인 위수강과 본류인 낙동강이 만나는 곳에 있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이면 매년 한 두 번은 낙동강물이 거슬러 올라와 우리 집 마당까지 물에 잠깁니다.

 

어른들의 농사 걱정은 아랑곳없이 바다보다 더 넓어진 평야 위를 커다란 고무방티(다라이)에 몸을 얹고 밥주걱으로 노를 저으면서 물장난에 신이 났던 즐거움만이 가득 찼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홍수가 나면 낙동강 제일 깊은 곳 바위틈에서 살던 1미터도 넘는 커다란 잉어(잉어의 평균 수명은 사람들과 같다고 함)들도 강물을 따라 강에서 거슬러 올라 동네 작은 개울까지 올라오는 바람에 모처럼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잉어 잡기에 흥분하던 우리 동네였습니다.

 

5학년 때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온(저녁 시간에만 잠시) 모두 합해도 23 가구 밖에 안 되는 하늘 아래 끝동네로, 나에게 있어서는 세상의 시작이요 끝인 꿈의 장소였습니다. 홍수가 나지 않은 보통 때에도 두 강이 합쳐지는 폭은 작게 잡아도 300미터가 넘습니다. 두 강이 합쳐지면서 중간에 여의도 같은 삼각주 모래사장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물이 흐르는 폭은 약 100 여 미터이고 나머지는 그냥 모래밭인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고 보석처럼 반짝입니다. 그렇게 눈부시게 반짝이는 모래밭을 지금은 어디서고 찾을 수가 없습니다. 보석을 뿌려놓은 듯이 반짝이는 모래가 지평선을 이루고 그 끝 삼각주에는 수 없이 많은 두루미 떼가 휴식을 취하는 모습은 바로 무릉도원입니다.

 

동네 쪽으로 물이 굽이치기 때문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강물이 제법 속력을 내며 무섭게 흐르고 있지만 나는 조금도 겁내지 않습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강물에 몸을 싣고 100 여 미터를 넘게 헤엄쳐 건너편으로 단숨에 이동합니다. 물이 촉촉한 모래밭이 나오고 그곳을 좀 더 지나면 햇볕에 달구어져 달걀이 익을 정도의 뜨거운 모래밭이 나옵니다. 뜨거움에 발을 동동 구르며 또 10 여 분을 더 달리면 신기루처럼 포플러(미루나무) 숲들이 우거져 있는 나만의 비밀장소가 나타납니다. 책에서 한 번씩 소개되는 오아시스 같은 곳입니다.

 

사막 한 가운데 시원한 물이 고여 있고 그 주변으로는 참외, 수박, 땅콩 등의 야생 과일(채소)들의 지천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물속에는 모래무지라는 고기가 살고 있는데 모래 속에 몸을 숨기고 사는 물고기로 이 또한 요즘은 아주 귀한 몸이 되었습니다. 두루미는 또 얼마나 많은지 모래밭을 수천 마리가 하얗게 뒤 덮고 강가 모래밭의 조개를 잡아먹다가 점심때가 되면 서로의 몸을 기대고 낮잠을 즐깁니다. 나의 장난에 한 번씩 놀라서 모두가 한꺼번에 비상하는 모습은 정말 무릉도원이 아니면 볼 수가 없는 장관입니다.

 

모래밭 가운데 오아시스! 사하라 사막의 오아시스인들 이렇게 멋있고 좋을까요? 정말 시원한 물과 포플러나무 그늘, 널려져 자라고 있는 과일들 채소들, 그리고 물고기, 조개. 오아시스의 물은 그냥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그렇게 많이 먹었어도 한 번도 배탈이 나지 않았으니까요. 물에서 놀다가, 두루미 사냥도 하다가, 조개도 캐다가, 물고기도 잡다가. 이 모든 것이 지겨워지면 그 뜨겁게 달구어진 모래밭을 얼마나 오랫동안 달릴 수 있나 혼자서 내기도 해 봅니다. 혼자면 어때? 모든 것들이 친구인데.

 

그럭저럭 2, 3시간을 즐기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조개든, 물고기든 저녁 반찬거리는 마련해서 돌아옵니다. 때로는 두루미를 잡을 때도 있습니다. 요즘이야 잡으면 안 되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두루미 고기 먹어 본 사람 있을까요? 생고무처럼 정말 질기지만 담백한 맛이 일품입니다. 두루미나 덩치가 큰 새들은 비상할 때 일정 길이의 활주로가 필요합니다. 비행기처럼 한참을 달려 속력을 올려서 비상을 해야 합니다. 비상하는 반대쪽에서 갑자기 나타나 공격을 하면 포획을 할 기회는 충분히 있습니다. 물론 얼마나 발각되지 않고 접근을 하느냐가 성공의 관건이지만.

 

그렇게 신선놀음을 즐기다 집에 돌아오면 오후 3시쯤이 됩니다. 그때서야 동네 사람들이나 동물들의 소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잠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시계가 귀했던 시절이라 마당에 만들어지는 지붕의 그늘을 보고 시각을 예측하곤 했었습니다. 세종대왕님이 가르쳐 주지 않았어도 그 이전부터 해시계는 그렇게 이미 사용되어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후 330분쯤이 되면 어른들은 논으로 밭으로 일하러 가십니다. 미처 막걸리를 준비하지 못하고 일하러 나가실 때는 5시쯤에 도가(동네에서 막걸리 제조 및 판매 허가를 받고 영업하던 집을 말함)에 가서 막걸리 한 주전자 사서 일터로 가지고 오라고 일러주십니다. 도가에서 막걸리 한 되를 사서 일터로 가다보면 나도 목이 말라 조금씩 막걸리를 마시게 됩니다. 목적지에 도착해 보면 거의 반 이상의 막걸리가 비어져 있을 때도 있습니다. 너무 많이 비어졌을 때는 가장 시원한 물이 나오는 계곡의 물을 보충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시원은 해야 하니까. 다 알고 계시면서도 아버지는 절대 표현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덕에 나는 어릴 때부터 술을 자주 마셨습니다. 보통 막걸리를 사 가지고 일터로 갈 때는 집안에 있던 소도 함께 몰고 나갑니다. 한 여름이 되면 소도 농사일을 마쳐서 놀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봄과 가을에만 소가 담당해야 할 일이 많음). 이 때 소를 돌보는 일은 나의 담당이 됩니다. 소의 먹이가 되는 풀(소꼴)이 있는 곳에 소를 풀어놓고 나는 내일 아침에 쇠죽을 만들 소꼴을 벱니다. 낫을 이용해 순식간에 한 소쿠리를 채우고 난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알프스의 하이디보다 더 자연과 함께 살았던 것 같습니다. 너무 행복하고 꿈속 같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눈이 커다란 우리 집 늙은 소는 나의 친구이자 가족이었습니다.

 

우리 집 소는 얼마나 영리했던지 내가 혹시라도 그림을 그리다가 잠이 들면 나를 깨워서 집으로 가자고 할 정도입니다. 내 생각을 말을 하지 않아도 먼저 알고 행동하고 자신보다 주인인 나를 더 챙겨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자랑할 만한 우리 소의 좋은 점이 있습니다. 풀을 많이 뜯어먹고 배가 불러지면 저녁 무렵 돌아오는 길에는 나를 등 위에 태워줍니다. 동화 속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소타는 모습을 나는 거의 매일 했었습니다.

 

어쩌다 중심을 잃고 떨어져서 소의 발밑에 들어가 밟혀도 소는 절대 내가 밟힌 발에 힘을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위험한 것이 있거나 위험한 일이 생기면 먼저 알고 나에게 메시지를 전해주곤 합니다. 내가 철이 들고 우리 집이 농사를 그만 둘 때까지 함께 살고 함께 지냈던 가족이었습니다. 도시로 이사하면서 헤어질 땐 눈물도 많이 흘렀습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누렁이의 커다란 눈동자가 다가옵니다.

 

오늘은 초여름인데도 벌써 많이 덥습니다. 이렇게 더운 날에는 오침이라도 즐겨야 하는데.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요즘도 나는 오침을 잘 즐기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