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칼럼] 유네스코와 순천낙안읍성③

관리자 2020-05-07 (목) 10:05 3년전 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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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수/ 참살이 뉴스 대표,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순천본부장

계절의 여왕 오월이다. 지구촌에서도 대한민국 전라남도 순천낙안읍성의 오월은 푸르디푸르다. 연두 빛 이파리가 푸른빛을 띠는 산과 들 사이사이로 나들이객들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봄나들이를 놓쳐버린 상춘객들의 뒤늦은 봄나들이가 시작됐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코로나19로 굳게 닫혔던 몸과 마음을 달래보려 할 것이다. 갇혀 있었던 심신을 대자연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을 것이다. 어쩌면 아름다운 경관을 탐닉하고 심신을 풀어보는 것도 좋은 일과일지도 모른다.

푸르디푸른 오월의 순천낙안은 한마디로 평화롭다. 넓게 펼쳐진 낙안들에는 백색혁명을 일으켰던 비닐하우스가 즐비하게 들어서있으며, 보리와 밀 그리고 소먹이 풀들이 오월의 푸른 정기로 쑥쑥 자라나고 있다.

필자는 지난 십 수 년을 낙안읍성 내 초가에서 살았었다. “유네스코와 순천낙안읍성”의 칼럼을 쓰면서 그곳의 생활상을 잊지 못한다. 아마도 그것은 당시의 생활상이 그립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초가와 돌담길 그리고 고요속의 정서는 필자의 뇌리에서 떠나질 않고 있다.

낙안읍성의 하루는 바쁘게 돌아가면서도 한가롭다. 저녁 6시가 되면 관광객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그때부터 낙안읍성은 인적이 끊기고 고요가 시작된다. 주민들의 발길조차도 뜸한 밤이 되면 까만 하늘에 반짝이는 별무리만이 밤하늘을 수놓는다. 가끔씩 들려오는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고요를 깨뜨릴 뿐이다. 밤과 낮의 분위기가 사뭇 다른 이곳은 밤의 아늑함을 즐길 수 있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낙안읍성 안과 밖의 단절감의 벽은 두껍다. 특히 읍성 안과 밖의 사람들과의 관계까지도 소통의 문제점을 안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낙안읍성사람들은 이곳을 대대로 지켜온 순수한사람들이다. 밖에서 들어온 몇 사람들의 이해관계로 인해 불협화음이 발생되고 있을 뿐 아니라 밖의 사람들과도 소통이 원활치 못한 실정이다. 전체의 성안사람들을 두고 볼 때, 그들의 순수성은 밤하늘의 별빛마냥 깨끗하고 맑다.

무엇보다도 주민들이 살고 있는 낙안읍성의 또 다른 특이점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T자형 간선도로를 제외한 길은 자유곡선형의 좁은 골목길이다. 주택들은 대부분 좁은 골목길에서 연결된다. 담은 높이가 대체로 눈높이 정도이지만 남북로에 접한 집들의 담은 처마아래까지 빈틈없다. 길에서 집안이 조금도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고리 형 길과 막다른 골목들은 그물처럼 연결된 미로 같다. 따라서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길을 잃을 때가 많다.

낙안읍성은 양반들보다는 관에 출입하는 아전들이나 가난한 서민들이 주로 살았다. 양반들이 낙안읍성 안에서 살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지방관과 관속이 있는 고을에서 벗어나 향촌에 터를 잡았기 때문이다. 지방관들은 한 지역에서 2년 정도 근무했으므로 양반들은 굳이 그들과 어울릴 필요가 없었다.

그런 연유에서 볼 때, 낙안읍성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민초들이었다. 집은 남부 지방의 전형적인 一자형 가옥으로 방과 마루, 부엌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부엌, 큰방, 작은방 등 3칸이 나란히 배열된 초가삼간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다른 지역에 있는 3칸 집은 부엌에서 방 3개를 동시에 난방 하도록 구들을 놓으나 낙안읍성의 몇몇 집에서는 작은방 앞에 아궁이를 따로 두고 큰방과 별도로 난방 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하면 여름철에 부엌에서 밥을 하더라도 작은방은 난방 되지 않아 모든 방이 한증막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낙안읍성에서 초가삼간 다음으로 많은 주택이 4칸 집이다. 3칸에 대청을 하나 추가한 것으로 큰방과 작은방 사이에 들어간다. 4칸 집에서 작은방, 즉 건넌방은 사랑방과 같은 위상을 갖는다. 따라서 방의 마구리 쪽으로 문을 내 옆에서 출입함으로써 다른 부분과 어느 정도 구분한다. 건넌방을 난방하는 아궁이는 방 뒤쪽에 설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대개의 집들이 죽담(흙담)으로 쌓여 있고 높이가 낮으며 방문을 작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제한된 토지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 즉 주거지의 밀도를 높이려는 시도는 집 안에 텃밭이 별로 없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성벽을 민가의 담으로 활용해 공간의 낭비를 없앴으며, 길을 향한 집들은 건물 밖으로 담을 두르지 않고 건물 외벽이 담을 겸하도록 해 외벽과 담 사이에 생기는 공간을 없앴다. 따라서 낙안읍성에서는 돌로 쌓은 담과 흙으로 쌓은 건물 외벽이 맞대어 이어지며 두 종류의 거친 재질감이 어우러진다.

마당도 밀도를 높이기 위해 독특하게 만들었다. 보통 민가에서는 안마당과 바깥마당이 구분되며 안채와 부속채로 둘러싸인 안마당은 생활공간으로, 바깥채 혹은 사랑채 바깥쪽에 조성되는 바깥마당은 작업 공간으로 활용한다. 그런데 낙안읍성에서는 바깥마당을 따로 두지 않고 넓은 안마당의 경사를 이용해 단의 차이로 구분한다. 이처럼 밀도를 높여 공간을 구성한 이유는 낙안읍성이 다른 전통마을과는 달리 읍성도시이기 때문이다.

낙안읍성은 다른 전통마을보다 정겹게 느껴지는데, 건축 소재를 가공 없이 그대로 사용해 집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목조 가옥에서는 기단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목조로 지은 전통 한옥은 물기에 약하므로 기단을 통해 비가 왔을 때 물에 잠기거나 집이 습해지는 것을 방지하고 햇빛을 많이 받도록 한다. 낙안읍성에 있는 집들의 기단은 잘 가공된 장대석을 높이 쌓는 사대부 기와집과 다르게 둥글넓적한 막돌을 주워 한 줄 내지 많게는 서너 줄 쌓아 올린 것이 전부다. 둥글둥글한 모양이 우리 서민들의 심성을 나타내는 것 같아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따라서 낙안읍성 안의 건물 중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모두 9채다.

이처럼 낙안읍성은 초가와 돌담길, 골목길, 죽담 등이 어우러져 운치가 있는 개획도시다. 실지로 주민들이 초가에서 생활하고 있는 유일한 성이다. 그러므로 유네스코와 순천낙안읍성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싶다. 필자의 “푸르디푸른 낙안읍성오월”이라는 졸시를 게재해 본다.

연두 빛 촉감으로
푸르고 푸른 낙안읍성 오월을 불러본다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어린이날 어머니날 스승의 날 가정의 날교육의 날
계절의 여왕으로 통하는 오월
그대여!

당신이 바라는 선물은
아름다운 장미꽃도 아니고
향기 짙은 아카시아 꽃도 아니고
달콤하고 은은한 라일락꽃도 아닌
그저 포근하게 안기고픈
따스하고 포근한 엄마 품안
연두 빛 그리움이다

그리스의 May도
어머니 신
마이아를 그리듯
오월, 당신은
돌담골목길 초가집에서
끝없이 푸르른 하늘을 날아오르고
한없이 넓고 깊은 바다를 풀어헤치는
자유자재의 여왕, 연두 빛 어머니다

(필자의 “푸르디푸른 낙안읍성오월”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