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우,기록여행 5] 나의 영국 연수기

이훈우 2019-11-19 (화) 18:53 4년전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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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우/동경한국학교 교감,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일본 본부장

 

내가 연수를 받던 곳은 싸우스 엠스턴이라는 영국의 남쪽 바닷가의 작은 도시였다. 휴일이면 많은 사람들이 바닷가에 나와서 햇빛을 즐기곤 하는 동화 같은 예쁜 바다가 있는 해변 마을이었다. 휴일을 여유롭게 즐기는 영국인들을 보면서 많이 부러웠던 기억이 새롭다.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보면 대부분의 가정에서 마당에 작은 정원들을 꾸미고 가꾸는데 열심인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다양한 꽃들이 많았지만, 교사인 나도 잘 모르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꽃들도 더러 보였다. 그 중에서도 양귀비는 나의 관심을 많이 끈 꽃 중의 하나였다. 화초로 개량되어 요즘은 한국에서도 흔희 볼 수 있지만 당시 나는 한국에서 양귀비를 본 적이 없었다. 재배 금지 식물이라는 생각과 함께 처음 보는 강열한 꽃 색깔이 나를 놀라게 했었다.

 

그 당시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영국과 일본은 많이 닮아 있다. 섬나라이면서 왼쪽으로 차량이 다니는 것을 두고서라도 엄청 크고 화려한 공공시설물에 비해 개인의 집이나 시설물은 아주 작고 검소하다는 것, 휴일이면 사람들이 정원을 가꾸며 여유롭게 소일거리 하며 지낸다는 것, 정원이나 가로수의 과일나무에 달린 과일을 먹지 않고 그대로 구경만 한다는 것, 휴일이면 PUP에서 맥주 한 잔 시켜놓고 대화를 즐기거나 카페에서 담소를 나무며 삶에 여유를 만끽한다는 것, 호텔 등이 방의 수로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수로 계산된다는 것, 문화와 전통을 지나치게 소중히 한다는 것 등 수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아마도 영국의 문화를 일본이 모방한 듯도 하다.

 

수업이 끝난 저녁이나, 휴일이면 동네 PUP에 자주 갔다. 1파운드(1,500원 정도) 하는 흑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외국에서의 어설픈 생활에 대한 이야기들을 안주 삼아 두 세 시간을 떠들기가 일쑤다. 다들 과음이나 과용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보통 두 세 잔의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 것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운이 좋은 날은 이동식 가라오케(노래방)이 가게에 들어와서 노래를 부르거나 손님에게 부르도록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지금은 노래방 천지이지만 당시는 보기 힘든 장면 중의 하나라 신기하기 했었다. 1파운드를 내면 세 곡까지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아쉽게도 한국 노래는 없었지만 귀에 익은 리듬과 간간히 들리는 가락은 나름대로 향수를 느끼게 했다.

 

영국의 날씨는 늘 흐려있다. 화창한 날씨는 참으로 보기 힘들 정도이다. 그래서 인사가 주로 날씨 이야기이다. 그 날도 역시 비가 내릴 것만 같은 흐린 날씨 속에서 휴일을 맞았다. 마땅히 할 것도 없고 해서 동료 연수생들과 PUP에 들렀다. 그런데 그 날은 한 쪽 구석에서 친숙한 말이 들려왔다. 가만히 살펴보니 구석에 남자 둘이서 맥주를 기울이며 담소를 하고 있는데 한국 사람들이 아닌가? 머나 먼 나라 영국에서 한국 사람들이라니!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통성명을 하고 보니 대기업인 **에서 연수 파견을 나온 젊은이들이었다.

 

그 기업에서는 매년 경력 10년 정도의 사원 중에서 엄격한 기준에 따라 40여 명씩을 선발하여 세계 각지로 2년 간 파견을 보낸다고 했다. 큰 과업이나 과제도 없이 그냥 즐기고 놀고, 다니다가 서 너 쪽의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면 된다고 한다. 그 때는 잘 살지도 못하는 나라에서 그렇게 까지 해야 할까라는 막연한 반대의 생각도 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세계 각지로 떠났던 그 사람들이 현재 **기업의 핵심 인물들이 되어 세계 속에 우뚝 선 회사를 만들었고, 그 힘으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업의 오너로서 참으로 멀리 바라 본 선택에 존경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참으로 위대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한국 사람들끼리 만나 그 동안의 영국 생활에 대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중 관심을 끄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얼마 전, 에든버러로 타투공연을 구경하러 갔었다고 한다. 호텔 예약을 하지 않아서 작은 민박집을 찾았는데 한국 사람들에게는 방을 빌려주지 못하겠다고 해서 너무 놀랐고 서운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얼마 전 한국 사람들이 방을 예약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한국 사람들에게는 방을 안 빌려주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냐고 구체적으로 물었더니, 어떤 한국 사람이 한 사람이 숙박하는 걸로 예약해 놓고서는 두 사람이 자러왔고, 10시 전에 체크인을 하라고 했는데 11시가 넘어서 와서는 대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어 달라고 큰소리로 떠들어서 주변 동네 사람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었다는 것이다.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 일인데 그 뒤부터 한국 사람들에게는 방을 빌려주지 않겠다는 것을 보면 아마도 다른 이유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야기를 멈추고 그 상황을 자세히 들어보았다.

 

아뿔싸! 바로 그 주인공이 바로 우리 연수팀이 아닌가! 너무 놀라고 부끄러웠다. 우리들 때문에 한국의 이미지가 실추되었고, 방까지 빌려주지 않겠다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많이많이 무거운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우리 연수생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느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