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도열 원장, 고운 최치원 선생 국제학술대회 참관기

관리자 2019-05-10 (금) 11:55 5년전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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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도열 국가발전정책연구원 원장이다>


 

고운 최치원 선생 국제학술대회가 2019년 5월8일(수), 합천군 종합사회복지관 3층 대강당에서 “합천 가야산이 품은 고운 최치원의 인문학적 가치” 라는 주제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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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장면이다>

 

 

이번 대회는 경남 합천군(군수 문준희)이 주최하고, 경남대 고운학연구소(소장 김정대)가 주관하고, 고운국제교류사업회(이사장 최효석)가 후원했으며, 중국 양주시 최치원 기념관 이 빈 관장을 비롯하여 학계, 합천군민과 경주최씨 중앙종친회 등 각계각층에서 400여명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문준희 합천군수는 “최치원 선생은 중국 당나라에서 ‘토황소격문’의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신라로 돌아온 뒤에는 진성여왕에게 시무책을 올려 정치개혁을 추진했고, 유교, 불교, 도교에 이해가 깊어, 유불선 통합사상을 제시하였으며, 수많은 시문을 남겨 한문학의 발달에도 기여했다”고 말하며, 한·중 문화교류의 원류이자 한류문화의 선구자”라고 말했다. 

 

김정대 경남대 고운학 연구소장은 “5월의 홍류동 소리 길을 걸으며 고운선생의 학술대회를 개최하게 되어 영광스럽다고 말했고, 최효석 이사장은 “중국은 10월 15일을「최치원의 날」로 지정하여 매년 추모 기념식과 제향행사를 거행한 우리들의 선각자로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기조발표를 한 최병주 명예회장은 “신라 최고의 천재로 알려진 최치원은 12세 때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는데, 그 때 아버지가 써준 좌우명은 인백기천(人白己千)이었고, 다른 사람이 백번 노력하면 나는 천 번 노력한다는 정신으로 6년을 하루같이 학문탐구에 열중하여 18세에 과거시험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고 했다.

 

제1발제자 최영성 교수는, 최치원 말년의 역사적 발자취를, 제2발제자 이빈 관장은, 문화교류의 교량구축을, 제3발제자 군산대 김성환 교수는, 최치원과 도교와 가야산 승선설화를, 그리고 경남대 노성미 교수는, 가야산 홍류동과 최치원의 관광 스토리텔링(storytelling) 방안을, 발제 했다. 좌장과 사회를 맡은 경남대 정은상 교수는, 고운 최치원 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재조명했고, 양주기념관 관리과 왕평 주관은 지정 토론에서, 한·중간의 진정한 우정과 새로운 교류의 장을 열자고 했다. 

 

이날 고운 최치원선생 국제학술대회의 참석자들은 서울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합천군내 대회장에 들렀다가 상경 길에 가야산 해인사에 들렀다. 평소 언행일치와 학식이 높은 존경스런 전(前) 동국대 최상범 부총장님은 “세계 문화유산 천년고찰 해인사 구경보다 가야산 홍류동 폭포 곁의 바위에 새겨진 고운의 제석시(題石詩)를 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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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선생의 제석시이다>

 

 

일행은 고운 최치원선생, 그가 세상을 은둔(隱遁)하여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풍류의 고장 가야산에서 선신(善神)이 되기 전 바위에 세긴 시(詩)를 찾아 나섰는데, 표지석도 없이 

 

광분첩석후중만(狂奔疊石吼重巒)바위 골짝 치닫는 물 첩첩 산골 뒤흔드니

인어난분지척간(人語難分咫尺間)말소리는 지척임에도 분간하기 어렵구나.

상공시비성도이(常恐是非聲到耳)세속의 시비 소리 행여나 들릴세라

고교유수진롱산(故敎流水盡籠山)흐르는 계곡 물로 산을 둘러치게 하였구나.

 

라는 제석시(題石詩)는 시냇물 소리, 계곡물 소리, 폭포 소리, 자연의 소리로 다가왔다.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은 「토황소격문」에서 “천하 모든 사람이 다 너를 죽이려 할 뿐만 아니라, 땅속의 귀신도 이미 벌써 남몰래 너를 베기로 의논했느니라” 라고 인간에게 선악징벌방식으로, 난폭한 상대를 공포에 떨게 하고, 정신적인 격퇴로 낙상케 하는 등, 칼이 아니라 글로 천지를 뒤흔드는 격조 높은 문필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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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이 넘는 전나무 앞이다>

 

 

합천 해인사의 학사대는 가야금을 연주할 때 수많은 학(鶴)이 날아와 경청했다는 곳으로 고운선생이 시서(詩書)에 몰입하던 곳이다. 그 당시 거꾸로 꽂아 두었다고 전해지는 전나무 지팡이는 천년 풍상을 겪은 고목이 되어서도 푸르름과 늠름함을 간직하고 있어, 고운 시조공의 힘찬 기(氣)를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