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수필] 느림의 정, 순천남도삼백리 길에서

오양심 2019-04-22 (월) 16:18 5년전 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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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수/ 시인>

 

 

노을이 붉다. 잔인한 4월이 지나가기 전에 또 다른 그리움을 더듬는다. 순천의 남도삼백리 길, 그 길은 느림의 철학과 느림의 정을 안겨주며 역사성이 있는 길로써 작은 그리움이 움트는 길이다. 무엇보다도 이순신장군의 백의종군 길을 비롯해 한양옛길은 조선시대 순천부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한양옛길은 삽재 팔경 길을 지나 과거관문 길과 백의종군 길을 거쳐 동천에 이르는 길로써 순천부의 역사성과 문화성을 대변하는 길이다. 게다가 남도문화 길은 순천만갈대 길을 시작으로 꽃 산 너머 동화사 길과 읍성 가는 길, 그리고 오치 오재 길과 매화 향길로 이어지고 있다. 또 천년불심 길은 천년고찰선암사와 삼보사찰의 하나인 송광사를 잇고 있으며, 호반벚꽃 길은  주암호와 상사호를 잇는 호수길이다.

 

꽃비가 내리고 연두 빛 이파리가 돋아나는 남도삼백리 길에는 아직도 낭만적인 서정과 훈훈한 인정 그리고 아름다운 미정이 흐르고 있다. 실지로 남도삼백리길이 시작되는 순천시 해룡면 와온 마을은 일몰의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훈훈한 인정이 메마르지 않는 어촌마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다와 갯벌에서 생산되는 각종어패류의 음식으로 먹거리가 풍부했으며, 붉게 물든 저녁놀을 바라보면서 만담과 재담을 나누었던 풍류의 멋을 즐기는 동네였다.

 

순천만 갈대 길은 봄부터 겨울까지 계절변화를 나타냄은 물론 문학과 예술의 산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청 갈대가 손 키만 큼 자랄 때면 아이들이 즐겨 부르는 동요가 생각나고, 짙푸른 갈대숲이 우거지면 어패류의 활동성과 시원한 그늘 막을 형성한다. 또 가을의 서정은 갈대 빛깔 그대로의 운치와 갈대 몸통 부딪는 서걱거림의 소리가 구슬프게 들린다. 즉, 유행가 가사처럼 “아! 으악 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라는 노랫말처럼 가을의 갈대밭은 낭만을 품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눈 내리는 겨울 갈대밭은 엄마 품과 고향집을 그리게 한다. 이외도 철새들의 보금자리로 그 따스함이 베어나는 곳이다.

 

동화사 길과 읍성 가는 길도 봄꽃들의 향연을 지켜볼 수 있는 곳으로 서정을 넘볼 수 있다. 청춘연인들이 즐겨 찾는 길이다, 아니다. 동화사를 뒤로 하고 하얀 배꽃이 피어나는 이곡마을을 지나치려면 깊어지는 달밤이 떠오르고, 그 배꽃 밭에서 춤추는 여인들의 풍광이 그려진다. 낙안읍성을 중심으로 금전산과 오봉산 그리고 제석산, 존재산, 백이산, 고동산자락은 낙안팔경으로 세월을 거스르고 있는 듯하다.

 

천년불심 길과 오치 오재 길은 조계산을 양편으로 남쪽으로 선암사, 북쪽으로 송광사가 자리하고 그 산길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힐링 도립공원으로써 각광을 받고 있다. 또 접치와 오치는 산등성이 고갯길로 유명하고 매화향기 길로 이어지는 관문이다.

 

삽재 팔경 길과 과거관문 길 그리고 백의종군 길은 한양옛길로써 산골짜기에 여덟 개의 마을이 있으며, 산세가 아름다워 선비들이 휴식을 취하는 길이라 할 수 있다. 또 이 근처 미초방원은 용이 지리산 천황 봉에서 내려와서 가마소의 물을 마시고 백운산 쪽으로 승천한 뒤에 비가 내렸다고 해서 회룡으로 하였다고 한다. 가마소는 아무리 메우려하여도 메울 수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즉, 미초방원은 미초마을에 향기로운 풀밭 동산의 승경을 읊는 것이다.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의 백의종군 길은 단순하지만 다양한 설이 따르고 있다. 순천부에 속해 있는 백의종군 길은 강변의 마을을 끼고 가는 길로서 서면의 청소마을과 관풍쟁이를 지나  미초마을과 구례까지 이어진다. 이 길 역시, 다수의 정자와 당산나무들이 지키고 있어 당시의 역사성과 선조들이 지난 발자취를 추적해 볼 수 있는 곳으로 운치 있는 길이다.

 

이처럼 느림의 정을 느끼게 하는 순천남도삼백리 길은 언제 걸어도 좋은 길이 아닐 수 없다.  젊음을 만끽하는 청춘남녀들의 자연공부는 물론 불혹의 연인들이 즐길 수 있는 트레킹 코스로도 안성맞춤이다. 어느 때라도 순천남도삼백리 길은 활짝 열려 있으며, 훈훈한 인정이 넘치는 길이다.   

 

하루가 타고 남은 저녁놀느림의 도시, 순천만 물들이고갯벌바다 찾아가는 햇덩이조용한 산촌, 움막에 나뒹군다

 

밤새 뒤척이다 터득한 삶직선보다는 곡선으로빠름보다는 느림으로

어둠 밀어내는 여명을아침 맞이하는 햇님을저녁 색칠하는 황혼을느림배낭에 담고 담는다

 

새벽공기순천을 산책하고아침노을 하루를 불태우고남도삼백리 길느릿느릿 걷고 걷는 느림보 와온 마을 어귀를 기웃 거린다

 

남도 

삼백리길 느림여행은허기진 서정을 채워주고굶주린 인정을 품어주며느림의 미정을 안겨준다

 

(필자의 “느림의 정”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