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식 사진작가, 금강산 백두산 사계를 촬영하여 지구촌 식구들의 심금을 울린

오양심 2019-01-18 (금) 20:34 5년전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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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식 사진작가>

 

 

[오양심 주간] 백남식 사진은 지구촌 식구들에게 심금을 울리는 힘이 있다. 그가 찍어낸 사진으로 북한 김정일 북방위원장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반기문 전 UN사무총장도 감동했다.

 

백남식은 1989년 호주 이민 후 호주영주권을 취득, 16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2000년 2월 8일부터 22일까지는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 ‘백두산해돋이 사진전’을 열었다. 개막식에서 김용순 아태평화위원장 겸 해외동포원호위원장에게서 노력훈장을 받았다. 백남식은 평양 전시회에 이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남북정상회담 축하 백두산 사진영상전’도 개최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백남식이 촬영한 금강산에 감동하여 로력훈장으로 보답했다. 故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백남식의 파노라마 사진에 감동받아 바티칸 교황청 광장에서 사진전을 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했다. 바티칸 교황청광장은 백남식이 사진전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생존해 있는 어떤 예술인에게도 전시기회를 제공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 의미가 깊었다.그가 처음으로 셔터를 누른 건 고등학교 다닐 때였다. 한국전쟁 당시 동네에 사진관을 개업한 사진관 주변을 기웃거리면서부터다. 그때 사진관을 경영했던 주인은 일본에서 정식으로 사진학과를 나왔고, 백씨는 귀싸대기를 맞아가며 사진을 배웠다고 회상했다.

 

백남식이 본격적으로 사진인생길로 접어든 건 고교시절 전국사진공모전에 특선으로 당선되면서부터다. 당시 백씨는 아버지께 카메라를 사주면 대학학비만큼은 직접 벌어 쓰겠다고 다짐하고, 집에 있는 콩 3가마니를 팔아 카메라를 구입했다.그는 고교 졸업 후 유치원 졸업사진 등을 찍으며 돈을 벌기 시작했고, 그 경력을 인정받아 천주고 구제위원회에 취직했다. 그곳은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람들의 고통을 분담하고자 강냉이, 밀가루, 우유 등을 지원받는 곳이었다. 

 

백남식은 이곳에서 미국의 원조를 끌어내기 위한 한국의 어려운 현실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그 일을 계기로 65년도에 국전인 5.16 신인 예술상에 입선하면서 본격적인 사진가로의 길을 걷게 된다. 백씨의 입선작품은 시대적 아픔을 잘 나타낸 작품으로 구입을 희망하는 단체가 많았다. 특히, 펄벅재단에서 구입을 희망했으나, 무료로 사진을 기증하여 주위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 후 ap통신 사진부 차장으로 매일 저녁 박정희 대통령과 외국 귀빈 국빈들을 촬영하러 다니기 바빴다. 그 와중에 ap통신 사장의 구속사건으로 회사에서 나오게 되면서, 자녀교육을 위해 호주로 이민을 갔다.  

 

그의 호주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의 사진실력을 인정받아 88올림픽 공식 지정 사진작가로 활동하게 되면서 조국과의 인연을 다시 맺게 되었다.백씨가 직장암으로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은 것이다. 병원에서는 백씨의 회생가능성을 1%~2%로 잡을 정도로 몸 상태가 심각했다. 백씨는 당시 “만약 내가 다시 살아난다면 장사나 사업이 아닌 국가를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라며 기도했다고 회상했다.백남식은 1994년 크리스마스 바늘구멍만 한 희망을 품고 수술실로 들어간 백씨는 이듬해 기적같이 다시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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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식 사진 작품/ 백두산 천지 들꽃>

 

 

호주 영주권을 가지고 있었던 백남식은 몸이 채 회복되기도 북한에 들어갔다. 사진기자가 아닌 사진작가로 북한의 촬영 허가를 맡았던 것이다.(그 당시 북한은 사진기자에게는 촬영허가를 잘 내주지 않았다.) 북한당국의 촬영허가를 맡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촬영한 사진을 신문사나 방송사에 판매하지도 않아야 하는 등 조건이 많았다. 백씨는 북 관계자에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남길 필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한 후, 북한당국으로부터 겨우 허락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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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식 사진 작품/ 백두산 리명수 폭포>

 

 

그 후 백남식은 15kg 상당의 장비를 6명의 일꾼이 나눠 들고 천지로 향했다. 또 수술 후유증으로 잘 걷지 못하는 백씨를 인민군 10여 명이 번갈아 업어가면서 하루 12시간 이상을 산행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때 찍은 금강산 사진을 6m 대형 슬라이드로 인화해서 북에 넘겼다. 북한에서는 백남식에게 사진전을 열어 달라고 요청했고, 그는 98년 5월 평양의 남북한마당 예술의 전당에 3m짜리 사진 100여 장을 가지고, 인민 대학습장 사무실 하나를 특별 제작하여 특별전시회를 열었다. 2월 8일 오픈 사진전은 16일이 김정일이 생일이라 문화이벤트형식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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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식 사진 작품/ 백두산 해돋이>

 

 

백남식은 2010년 자신의 사진생활 60년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바티칸, 북한, 한국의 아름다운 모습들로 회고록으로 만들었다. 그 후에도 ‘2002년 월드컵 사진전, 한반도 평화통일기원 금수강산 특별 사진전’ ‘반딧불 축제 사진전’ 등을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수십 차례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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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식 사진 작품/ 백두산 천지의 가을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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