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수필] 정으로 살아가는 우리네 삶

오양심 2019-01-03 (목) 09:31 5년전 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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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수/ 한세연 순천본부장>

 

동지 날이었다. 뻥튀기장사를 하고 있는 필자에게 동지 죽을 먹으러 오라는 우림친구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우림과 필자는 13, 중학시절부터 맺어진 친구사이로 남다른 우정이 담겨져 있다.

 

너무도 정감어린 목소리 속에는 우리네 인생사가 녹아있었다. 인생 60고개를 넘어선 우리에게는 건강과 우정을 빼고 논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성 싶다. 돈도 명예도 풋사랑도 모두가 추억담일 뿐이다.

 

일주일 멀다않고 얼굴을 대하는 그였지만 청순한 그의 자태와 동지죽의 정성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들이 짧아서인지 부쩍 건강과 안녕을 찾게 된 우리네 삶이다. 그 삶 속에는 지난날의 우정이 새록새록 피어나고 있을 뿐 아니라 깨지지 않는 불멸의 “s모임이라는 울타리가 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50년의 나이테가 감겨진 s모임 우정은 돌보다도 단단하고 무쇠보다도 탄탄했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턴가 그 울타리가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하찮은 자존심이랄까? 아니면 그 무엇일까? 참으로 안타깝고 서글프고 묘한 기분이 아닐 수 없다.

 

어느 조직이든 위계질서가 서지 않으면 그 조직은 무너졌다. 윗사람을 존중하고 아랫사람을 사랑으로 감싸는 온유한 정들이 오고가야만이 서로가 그리워하고 보고파하는 것이다. 우정이 얕을수록 시시비비가 많고, 우정이 깊을수록 설레는 마음으로 그리움을 잉태하지 않을까 싶다. 한걸음 아니 두 걸음이라도 물러서서 생각을 하고, 지난 50년의 우정을 되새기는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맥락에서 우림친구의 동지 죽이라는 졸시와 정으로 살아가는 우리네 삶이야기를 안 쓰고는 베길 수 없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와 같다.”고 설파한 파스칼이 생각난다. 그는 끝없는 우주와 미미한 인간의 존재를 갈대에 비교하면서 생각이라는 단어를 끌어들였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그 미미한 인간의 존재성은 생각할 수 있는 머리와 그 머리를 품을 수 있는 마음을 지녔다는 것이다. 또 그 마음은 곧 으로 이어지는 삶으로 풀이된다.

 

유난히도 정이 많았던 우리네 민족, 한민족의 역사를 들추지 않더라도 정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 그 삶은 정을 빼놓고 살 수 없으리라 믿는다. 특히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으로써 생각이라는 마음공간은 얼마나 소중한지, 한 번쯤은 새겨보아야 할 것 같다.

 

갯벌마냥 인생길은 질척거린다. 그 갯벌 속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갈대숲, 그중 하나의 개체로 불리운 갈대는 얼마나 볼품이 없을까? 그러나 인간은 생각이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갈대와 같다.”라는 표현은 우주는 거대하지만 자신을 알지 못하듯, 자신이 그처럼 거대하며 모든 생명체를 품고 있고 모든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조차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온갖 쓰레기와 추악이 흘러들어와 쌓여진 엉망진창구덩이에는 더러운 냄새와 찌꺼기로 몸살을 앓는다. 그곳에서 갈대는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 우리네 인생역시 그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볼품없는 갈대와 같이 미약한 인간을 파스칼은 이 거대한 우주보다도 위대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곧 자신을 알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 “정으로 살아가는 우리네 삶이라면 자신이 낮아지고 자신이 베푸는 삶, 그런 삶이 편하고 따뜻한 삶일 것이다. 정은 삶이다

 

어야! 용수야! 동지 죽 먹으로 와라! 어택이도 온단다.”

알았다, 뻥튀기 튀고 금방 갈께

 

우림友林친구

정든 목소리 들려오고

정이든 얼굴이 그려지면서

뻥튀기일터는 대충대충 마무리

달려가 보고픈 마음만이 앞선다

 

어제 밤에 얼마나 빌었는지

두 손바닥이 닳도록 빌었다

하얀 새알 빚으면서

아내를 빌고

자식을 빌고

친구를 빌고

이웃을 빌고

새해를 빌고 빌었다

 

붉은 팥을 따온 아내가

태양빛에 말린 붉은 팥으로

불 피우고 맑은 물도 끓여서

하늘빛 합친

하얀 새알심 비비고 비벼 만들어

동글동글 수많은 행성도 만들어

이웃사촌, 친구, 지인들 모아두고

한해의 액운을 물리치는

잊어서는 안 될 미풍양속을

 

우림友林은 말한다

건강보다 소중한 것 없다고

안녕처럼 귀중한 것 없다고

 

새알심 빚으면서 얼마나 빌었는지

우림友林친구 붉은 동지 죽에는

새알심이 토실토실 웃고 있다 (필자의 졸시 우림友林친구 동지 죽 전문)

 

* 友林-친구들의 숲이라는 뜻으로 김영문 친구의 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