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읽는 편지] 공존의 이유/ 조병화

김인수 2018-12-18 (화) 20:12 5년전 996  

 

 

 

 

깊이 사랑하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헤어짐이 잦은 우리들의 세대

가벼운 눈웃음을 나눌 정도로

지내도록 합시다.

 

우리의 웃음마저 짐이 된다면

그 때 헤어집시다.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지 않도록 합시다.

당신을 생각하는 나를

얘기할 수 없음으로 인해

내가 어디쯤 간다는 것을 보일 수 없으며

언젠가 우리가 헤어져야 할 날이 오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사랑합시다.

 

우리 앞에 서글픈 그날이 오면

가벼운 눈웃음과 잊어도 좋을 악수를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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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수 시인, 수필가>

 

​-인산(仁山)편지 중에서/ 육군훈련소 참모장 준장​

 

새벽에 길을 나서니 어제와 달라진 게 있습니다. 포근합니다. 지레 겁을 먹고 두툼한 옷을 걸쳐 입었는데 얼굴에 와 닿는 바람도 순하디 순합니다.

 

일기예보를 보니 이번 주는 최저 기온이 다소 올라가서 아침저녁으로도 그리 쌀쌀하지 않다고 합니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 서면 날씨는 늘 이렇습니다. 밀고 당깁니다. 아니 어쩌면 모든 것의 경계에는 늘 밀고 당기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어제는 입영행사장을 찾았습니다. 우리 훈련병 아들들에게 독서꾸러미를 기증하는 행사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랑의 책나누기 운동본부에서 후원하는 사업입니다.

 

군대라는 낯선 곳으로 아들을 보내야 하는 일, 익숙한 것과의 결별, 잠시의 헤어짐 등으로 인해 여러모로 아들들이나 부모님들이나 마음이 복잡한 상황에서 저는 짧게나마 인사말을 통해 우리 아들들이 훈련을 받으면서도 책을 가까이하고,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부모님들의 표정이 다소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박수도 받았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어느 부모님께서는 훈련소에서부터 책을 읽고, 책을 가까이 하는 아들이 되게 하겠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좋다고, 우리 군대가 정말 좋아졌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씀하십니다.

 

어찌 보면 그 작은 일 하나가 군대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고, 대한민국 군대에 대한 부모님들,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훌륭한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그 어떤 말보다도, 그 어떤 홍보물보다도 진정성을 담은 노력 하나가 중요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훈련병 아들들은 좋은 책 한 권과 병영독서가이드북, 독서노트 등 총 3권의 책 꾸러미를 받습니다. 그들은 책을 읽을 겁니다. 빈들판처럼 허허로운 마음에 글자 하나, 문장 하나의 감동이 그들의 마음을 채울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를 키워준 단 한 마디의 문장을 책 속에서 찾을 것입니다. 어느 가을날, 훈련소에서 읽은 책 한 권이 나를 큰 인물로 만들었다고 회상하는 사람도 분명히 나올 것입니다. 이 생각을 하면 참으로 가슴이 벅차고 떨립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군에 들어오는 우리 아들들에게 책을 읽히는 일은 그냥 단순한 독서운동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군대의 미래가 걸린 문제이고, 대한민국의 미래, 나아가서는 세상의 미래가 걸린 문제입니다. 이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음에 행복합니다.

 

제게는 오랜 시간 동안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 꺼리가 있습니다. 언제 적당한 때에 꺼내고 싶었지만 좀처럼 그런 기회를 만들지 못해 그냥 품고만 있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저만 그런 건 아니겠죠? 사람은 누구나 다 그런 이야기들을 품고 있겠죠? 그게 어떤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문제는 그냥 꾹 참고 품고만 있느냐, 아니면 속 시원히 다 풀어 내느냐의 차이입니다.

 

풀어 내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말은 하더라도 녹음이나 녹취를 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 그 자리에서 사라지지만, 글이란 건 그렇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평생을 따라다니는 건 물론이고, 몇 십 년, 아니 몇 백 년 몇 천 년까지도 끝까지 따라 다니는 것이 글입니다. 그래서 글을 남기는 것은 사실 언제나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어제 인산편지를 띄우고 나니 제가 속한 어느 밴드의 회원님들께서 글을 참 잘 쓴다는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마음에 드는 글을 쓸 수 있느냐고도 하셨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고맙다고 말씀드립니다. 사실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제가 아무리 작가라고 해도 글을 잘 쓴다는 소리를 들으면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소리를 들으면 제 자신이 쓴 글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세상에 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은지, 독자님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인지, 또 많이 알고 있다고 자랑하는 게 아니라 어느 때나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알기 쉽게 쓴 것인지... 등등 말입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건 제 글을 좋아하시고, 기다려 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분들께는 참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힘이 되어 주시는 분들입니다. 능력이 허락하는 한 정말 좋은 글을 통해 우리 인산편지와 세미책 회원님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중 한 분은(과거 함께 근무했던 예비역 선배님이시기도 한) 제가 언젠가 영화 이야기를 풀어 놓겠다고 편지에 쓰니 인산이 풀어낼 영화이야기가 기다려진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기다리겠습니다.